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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기념 중편 불교소설 공모 당선가작 구슬아 9

기자명 법보신문
그래서 꼭지의 머리카락은 참선공부다. 책상 밑에 넣어 둔 누룽지를 찾으려고 돌아 앉는데 밖이 수선스럽다. 무슨 일이지, 생각을 하며 누룽지를 꺼내 꼭지에게 주려는데 공양주보살이 헐레벌떡 연성의 방을 향하여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궁에서 쌀을 실은 사람이 왔나보군. 놀라서 뛰어올 법도 한 일이지.

"스님, 임금님한테서 뭐시 왔다는디요."

임금님이라구? 그게 아닌데. 하여튼 이 중생들이 겐지 고동인지 구별도못한다니까. 연성은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누비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나서려는데 보덕비구니가 다시 한번 숨이차게 뛰어 오면서 주지스님, 주지스님, 하고 불러댔다.

"알았네."

옷고름을 매만지며 연성은 대답했다. 꼭지는 누룽지를 받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절문 앞을 쳐다 보니 관복을 입은 남정네 몇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성스님은 무언가 일이 다르게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이상한느낌은 받았지만 천천히 신발은 신고 나섰다. 절문 앞에 채 다다르기 전인데 쩌렁쩌렁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명을 받으시오."

스님은 잠시 발걸음이 주춤했다. 영문을 몰라 잠시 그들을 쳐다보는 사이에 성급한 다른 사내가 큰 소리로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받으시오."

"웬 어명이시랍니까?" 연성이 묻자.

"감히 어명을 받으라는데 무얼 꾸물거리는건가."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어명을 어떻게 받는답니까?"

다시 연성이 물으니,

"돗자리를 이 앞에다 깔고 무릎을 꿇어라."하고 대답한다.

심상치 않은 광경에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늙고 젊은 스님네들이 한 겨울에 가까운데 있을 리도 없는 돗자리를 찾는 양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누군가 급히 넓은 방석을 들고 뛰어와 연성스님 앞에 놓았다.

연성은 얼떨결에 방석 위에 무릎을 끊었다.

"성상께서 내리신 말씀을 대신 읽겠으니 공손한 마음으로 받아 들으라."
하고 말한 뒤 그 관리는 두루말이를 펴 들었다.

"허망한 이단의 교를 따르는 무리가 날로 늘어 민정은 점차로 줄고 국가의 폐해가 심대하다. 이에 양민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자는 모두 환속시키도록 명령한다. 만약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가 있으면 관리나 환속 대상자를 막론하고 엄한 죄를 물릴 것이다."

연성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이렇게 오는 것이로구나. 새 임금이 들어선 이후 몰아닥치는 강력한 배불(排佛)의 움직임이 과연현실적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있었던 것이다. 왕의 교지를 다 읽은 관리는 두루말이를 다시 말아 놓은 뒤 연성스님에게명령조로 말했다.

"자수원의 주지는 어명을 어김없이 받자올 것이며 보름간의 말미를 줄것이니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라. 만약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에는 왕명으로처단할 것임을 명심하라."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 위로 겨울 햇살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승복을 입고 도성을 거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도성을 빠져나오는 것은더더욱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연성은 승복을 입고 다니면서 거쳐야 할 번거롭고 구차스러운 통과절차가 싫어서 편법을 썼다.

양가댁 마님의 옷을 한벌 구해 입고 머리에는 쓰개치마를 썼다. 앞이마에드러나는 민둥머리를 가리기 위하여 검은 천으로 수건을 만들어 머리에 둘렀다. 추운 겨울이었으므로 눈만 내놓고 쓰개치마를 폭 뒤집어 쓰면 이상할것이 없었다.

꼴지아범은 뒤따르게 하고 길을 나섰다. 백곡스님은 아마도 남한산성이거나 아니면 봉은사 두 곳 중 한 곳에는 계실 것이다. 봉은사를 먼저 들렀다가 안 계실 경우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남한산성에 닿아야 한다는 계산을 해놓고 새벽같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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