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山窓에 부는 바람

기자명 정묵 스님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가을…, 그리고 찬물 한 대야

새벽 도량석을 위해 나섰을 때 찬 기운이 알싸하게 맨머리를 감돌아 청량함을 주고, 하늘엔 한가위를 넘긴 반달과 어우러져 별들이 곱다. 달만이 홀로 빛나고 별들이 없다면 삭막하고 운치없는 새벽 하늘이 되었을 텐데 어우러지니 더욱 좋다.

수행의 길에서도 하늘의 달처럼 밝고 찬란한 부처님의 말씀과 어른 스님들이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보여주시는 빛 고운 가르침들이 있기에 정겨움도 있을 뿐더러 한길이면서도 수 없이 가지친 길 위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듯 하다.

송광사 강원시절 두어 달 남짓 지금의 방장 스님을 시봉 할 복연을 누린 적이 있다. 시봉한다고 해서 늘 모시고 다니면서 봉양하는 것도 아닌 그저 청소나 하고 방에 군불이나 지피다 스님이 밖에서 돌아오시면 잠시 잔심부름 몇 가지 해드리면 되는 편한 시봉 노릇이었다. 그때는 어른 스님이 주지 소임을 띠고 계셨는데 크고 편안한 주지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손님이 여럿 찾아오실 때만 잠시 이용하실 뿐 평상시에는 화엄전에 머무시곤 하셨다.

어느 날 저녁, 어른 스님께서 밖에서 돌아오셨다는 기별을 듣고 화엄전에 건너가 솥에 데워놓은 물을 길어 수각으로 가서 대야에 물을 따르려보니 이미 찬물이 담겨있었다. 무심결에 그냥 수채에 버리고 더운물을 따르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중이 돼서 어찌 그리 아낄 줄을 모르는가. 뒤뜰 대숲에다 붓고 올 일이지.”

물이야 늘 흔한 것이고 별로 아깝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몸에 뿌리내린지 오래된지라 대수롭지 않게 처신한 행동이라 뉘우치며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라하던 일이 하늘의 별처럼 또렷하다.

지금 정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댐을 건설하려 한다하여 총력저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실상사에 깃들어 있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물 사정이 원만하지 못한 것은 지나친 물 사용과 오염, 그리고 관리 소홀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화엄경》에 “여래의 참다운 몸은 둘이 없으신데 사물에 응하여 형체를 나누시어 세간에 가득하시네라”(如來眞身本無二 應物分形滿世間)는 말씀을 통하여 이 세계 모든 것이 부처님의 화현임을 되새긴다.

한 대야의 찬물조차 소중히 여기셨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에 담아내던 어른 스님의 모습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별 빛으로 다가든다.


정묵 스님/실상사 화림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