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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를 넘어 ‘JSA’로

기자명 성낙주
‘쉬리’와 ‘공동경비구역’은 작년과 올해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 영화들이다. 지난해 ‘쉬리’는 국내 흥행의 여세를 몰아 일본에서까지 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돌파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화역조(文化逆潮)를 우려하던 이들에게는 다소나마 위안이 될 법한 대성공이었다. 올 추석에 개봉된 ‘공동경비구역’도 벌써 서울 개봉관에서만 백만 명을 넘어서는 등 롱런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제 이 두 영화는 한국 영화사(映畵史)에 우리의 1999년과 2000년을 대표하는 수작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내용이나 영화 미학의 계보에 있어 두 영화가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쉬리’의 경우는 영화 미학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저급한 허리우드 영화의 대표주자인 ‘람보’를 ‘아버지’로 받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구성이 치밀한 ‘람보’에 비해, 필연성을 찾기 힘든 잔혹한 살상과 파괴로 일관하고, ‘사랑이냐, 조국이냐’라는 신파조의 감상주의까지 오버랩 되는 등 시나리오부터 허점투성이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 소재이다. 우리 모두의 아픔이자 극복해야 할 분단의 비극을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일본에서의 흥행도 달리 보아야 한다. 한일 간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일본인 관객은 ‘쉬리’ 전편에 흐르는 남북의 증오와 살육을 남의 문제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제삼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당사자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남북 문제를 소재로 ‘쉬리’가 만들어졌어도 남의 일처럼 갈채를 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이웃의 불행을 악용했다는 혐의로 민족 감정을 들먹이면서 연일 일본을 규탄했을지 모른다.

이와 같이 ‘쉬리’는 그림만 화려한‘람보’의 아류작, 곧 ‘극우반공상업주의’에다 허리우드의 ‘변태적 상상력’이 결합된 엽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년 말 〈동아일보〉에서 ‘올해의 인물’로 강제규 감독을 선정한 사실은 아직도 뒷맛이 씁쓸하다. 비유할 필요조차 못 느끼지만, ‘람보’따위의 작품한테 아카데미 감독상이 돌아가는 식의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경비구역’의 경우는 그 추리적인 기법이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일본 구로자와 감독의 ‘나쇼몽(羅生門)’으로부터 빌려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표절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전시대의 영화들이 축적해 온 미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 계승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남북 대치라는 우리의 예민한 현실을 다룸에 있어 끝까지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있음은 무엇보다 돋보인다. 이는 이 영화의 시각이 우리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최인훈의 ‘광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알다시피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휴전협정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남과 북이 아닌, 중립국 인도를 택해 이 땅을 떠나지만, 절망 끝에 인도양에 몸을 던졌다. ‘공동경비구역’은 바로 그 ‘이명준’의 후예, 곧 중립국 스위스를 택한 어느 불우한 망명객의 딸(이영애 분)을 등장시켜, 오늘의 남과 북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1960년 ‘광장’이 나온 지 40년만에야 우리 영화는 분단의 아픔을 비로소 등거리(等距離)에서 조망하는 위치에 이른 것이다. 지난 해 필자는 역겨움 속에 ‘쉬리’를 관람했다. 반대로 올해는 ‘공동경비구역’이 끝나는 순간, 박수를 쳤다. 작품 자체로, ‘쉬리’와 그 ‘쉬리’가 상징하는 지난 반세기 우리를 지배해온 냉전적인 모든 것들에 멋지게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는 민족 화해의 2000년도에 숨쉬고 있는 것이다.


성낙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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