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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문화’와 불교

기자명 이학종
올 우리 사회의 현상이나 흐름을 나타내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로 ‘엽기(獵奇)’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신드롬이란 말을 붙일 만큼 엽기적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흔히 엽기적 사건이라고 한다면 흉포한 범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범죄에서 엽기적 현상이 벌어진 것만을 놓고 우리 사회의 현상과 흐름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엽기를 거론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실제로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엽기적 현상이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학, 예술, 상품, 놀이, 장신구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엽기는 성행하고 있습니다. 엽기 신드롬이란 말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엽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수백 종의 엽기전문 사이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엽기사진, 엽기광고, 엽기개그, 엽기미술 등 그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엽기적 사건 또는 작품들은 그 수준도 세계적입니다. 지난 달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섬’이라는 제목의 우리 영화를 보고 외국인 기자가 실신하는 소동도 있었다는 소식은 우리의 엽기 수준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엽기의 사전적 의미는 괴이한 것을 즐겨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사회의 한 특성이라고 일컬어졌던 일종의 마니아 증후군 같은 것인데, 엽기는 이 마니아 수준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일종의 ‘울트라 마니아’인 셈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엽기적 현상들이 뒤틀리고 병든, 그래서 우리의 내일이 어둡다는 점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종이라는데 있습니다. 그저 일과성으로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상을 넘는 광기와 폭력성, 잔혹성으로 대변되는 엽기가 우리 시대 문화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각 분야에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전망부재의 시대를 견디는 또 다른 표정”이라고.

또 ‘부패한 사회 현실과 모순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오는데 대한 반작용’, ‘(긍정적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현실을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삶의 지루함과,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이 뒤바뀐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는 등의 분석은 엽기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넘길 문제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엽기문화’의 확산은 곧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역설적인 징표일 것입니다. 종교야말로 이런 비틀린 심성과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기능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 중에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총을 맞고 비참히 죽어 가는 며칠 전의 텔레비전 뉴스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잔혹함의 끝이 어딘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가히 엽기적이었지요. 되레 종교가 엽기문화 확산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엽기가 판을 치는 시대, 우리 정신문화의 기저를 형성해온 한국불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편집부장 이학종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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