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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시조시인 조종현 스님

기자명 이재형

종단-문단 넘나든 자유인

만해 스님 시 정신 이어

사찰 전답 소작인 분배

‘신앙이 곧 시’ 강조


‘나도 푯말되어 너랑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드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새랑같이 골속골속 울어도 보고.…’(나도 푯말되어 살고 싶다 中)

지금으로부터 꼭 14년 전인 1989년 8월 31일은 불교계 원로이자 한국시조문학계의 큰별이었던 철운 조종현(1904∼1989) 스님이 입적한 날이다. 스님은 구한말 격동기에 태어나 불교와 시를 등불 삼아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시처럼 살다가 극락정토로 떠난 것이다.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 선생의 뒤를 이어 현대시조의 중흥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종현 스님은 승가교육과 경전 번역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190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스님은 86년의 생애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3세에 선암사로 출가해 종현(宗玄)이란 법명을 얻은 스님은 전통적인 강원교육을 마치고 계속해서 1932년 중앙불교연구원 유식과를 졸업할 정도로 불교연구를 지속했다. 또 1929년 조선일보에 동요 ‘엄마 가락지’와 1930년 시조 ‘그리운 정’ 등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신석정, 주요한, 정인보, 이은상 선생 등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시조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한춘섭 평론가 등이 밝히고 있듯 시정신은 만해에게서, 시 창작 실기는 이은상에게서, 시 구성법은 정인보에게서 익힌 것이다.

스님은 해방 후 잠시 선암사 부주지를 맡기도 하지만 사회개혁을 위해 사찰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주지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져 가족과 함께 순천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우경화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모략과 곡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몰매를 맞고 끌려 다니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로 인해 가족들은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지만 스님의 아들이자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 씨가 표현하고 있듯 “아버지는 언제나 높아 보였고, 모르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엄하고도 어려운 존재”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국전쟁 후 스님은 우여곡절 끝에 벌교 상업고등학교에서 70년까지 ‘스님 선생님’으로 교단에 선다. 또 60년대부터는 불교활동에도 적극 나서 법화종 초대이사, 동국대 이사, 조계종 고시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한다. 첫 시조집 『자정의 지구』가 출간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69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선보인 이 시조집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신석정 시인이 “시를 다루되 손으로 매만지는 이, 머리로 궁리하는 이, 가슴으로 앓는 이가 있다. 그러나 몸으로 부딪치는 이가 바로 철운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현장성의 끈기와 자신의 고뇌를 삭이고 삭인 뒤 나타나는 삶에 대한 깊은 관조를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불심이 아니면 시심을 가질 수 없고, 시심이 아니면 불심에 접할 수 없다. 시심, 불심은 그저 동심이어야 한다. 신앙과 시, 시와 신앙은 둘일 수 없다. 신앙은 시라야 하고, 시는 신앙이라야 한다.”

스님이 시조집에서 일관되게 밝히고 있듯 시심(詩心)과 동심(童心)과 불심(佛心)을 하나로 보았다. 스님에게 시는 신앙이었고 수행이었으며 생활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내가 이제 이 사바세계를 떠나게 되는 모양이다. 머무를 만큼 머문 모양이다. 떠돌아다니는 나그네가 어디 한 여관에서 오래 묵던 일이 있던가. 끝없는 나그네의 길을 그저 끝없이 갈 뿐이다. 빙그레 웃으며 가자. 염불하고 시도 읊고 노래도 한 곡 부르며 가자.”

스님은 입적하기 얼마 전 남겼던 말처럼 그렇게 초가을 단풍 빛과 함께 떠나갔다.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스님이 부르던 노래와 삶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며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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