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⑩ 평양 정릉사-광법사 〈상〉

기자명 이학종
발굴된 명문으로 ‘정릉사’ 편액 제작

본전 비로자나불엔 아스카풍 깃들어



북한 방문 5일째. 방문 일정의 절반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지만 지루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특구 지정에 따른 제반 준비 관계로 개성직할시의 출입이 일시적으로 중단돼 개성 불교유적을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쉽지만 일정이 잡힌 곳이라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오늘의 일정은 평양의 두 사찰, 즉 정릉사와 광법사, 그리고 모란봉을 순례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는 그 유명한 옥류관으로 예정돼 있으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좋으면 평양을 다녀온 사람들마다 옥류관, 옥류관 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일보살’법타 스님 순례 합류


평양 시내를 도는 일정이지만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오늘은 모친상 관계로 조금 늦게 평양에 도착한 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과 함께 순례를 하게 돼 기대가 더하다. 다 알다시피 법타 스님은 ‘통일보살’로 불리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북한통인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승합차에 오를 때부터 여느 날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 노련하고 유연한 언행이 몸에 밴 법타 스님의 적절한 조크와 코멘트가 남북 불자간의 이질감은 물론이고 순례의 곤함까지 반감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에 들려야 하는 곳은 동명왕릉과 정릉사이다. 정릉사는 고구려의 시조왕 고주몽, 즉 동명성왕의 무덤 옆에 있는 절로, 고구려 초기의 사찰이다.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의, 평양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낙랑 준평원의 동쪽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정릉사는 고구려 동명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다. 5세기 초 동명왕릉을 옮겨올 때 지어졌는데, 1974년 정릉사 터의 대규모 발굴을 통해 ‘정능’, ‘능사’ 등의 글자가 새겨진 와편이 발견됨으로써 이 사찰이 왕을 위해 지어진 것임이 판명됐다. 본래 남북 132.8미터, 동서 223미터의 구역에 18채의 전당터와 10개의 회랑터가 발굴될 만큼 방대한 규모의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중앙의 8각7층석탑을 중심으로 본전인 보광전과 좌우 양측의 전각이 있고 회랑이 둘러싸여 있다.


정릉사 가는 길에 짙은 안개가


평양 중심가를 빠져나오면서 정릉사로 향하는 길로 접어드니 한결 도로가 한산하다. 때마침 평양 인근에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불편할 정도다. 채 30분이나 달렸을까. 안개 속에 정릉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여성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동명왕릉을 돌아보고 난 후 정릉사를 참배했다. 짙은 안개에 묻힌 사찰의 고즈넉한 정경이 외려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드물게 회랑에 둘러싸인 사찰 앞으로 다가서니 ‘정릉사’라는 편액이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편액의 서체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발굴당시 출토된 글씨를 그대로 판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저 편액에 쓰인 글자는 고구려 시대에 살았던 이름모를 명필이 남긴 것이다. 과감한 생략, 힘차게 휘갈긴 저 붓질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읽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릉사의 건축 양식은 절터 이외에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건축양식을 적용, 건물의 형태를 재현했다고 주지 정진(전풍남) 스님이 전한다. 그러나 최근에 지은 건물이어서 고졸한 맛은 느낄 수 없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비로자나 부처님처럼 보이는데, 아스카 문화의 느낌을 풍기는 등 고구려 불상의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성했지만 아무래도 고찰에서 보던 눈에 익숙한 불상과는 다른 감이 없지 않다. 게다가 지나칠 정도로 웅장한 광배나 커튼을 내려뜨린 듯한 생경한 모양의 좌대로 인해 아마추어적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절 중앙에 위치한 8각7층석탑은 웅장한 맛에 비해 정교한 맛은 떨어진다.

아무려나. 영 불교가 없을 것 같았던 북녘 땅에서 옛 절을 복원되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볍다.



옥류관 냉면 맛은 “세계 최고”


절을 돌아보다 보니 벌써 12시가 가까워 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옥류관 냉면을 맛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주지스님과 이별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평양 시내의 옥류관으로 향했다. 한옥식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옥류관은 우선 규모가 대단하다. 동시에 수천 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식당의 광경은 서울의 장사 잘되는 음식점과 다를 게 없다. 넘치는 손님으로 정신없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 의례원의 눈짓과 발걸음은 잠시도 멈출 틈이 없다.

일행의 대부분이 쟁반냉면 200그램과 녹두 빈대떡을 신청했다. 냉면은 남쪽에서처럼 큰 쟁반에 2-3인분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1인용 쟁반그릇을 특수하게 제작해 각각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색다르다.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 스님은 이 독특한 냉면 그릇을 김일성 주석이 고안했다고 설명한다. 음식을 남겨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배려라는 것이다.

소문대로 냉면의 맛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법타 스님의 말씀마따나 냉면 맛은 이곳이 세계 제일인 듯싶다. 국수의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것이 옥류관만의 특수한 비결이 있음이 분명하다. 냉면을 몹시 좋아한다는 심상진 서기장은 벌써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일행들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옥류관에서 그 유명한 평양냉면을 먹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기념사진 촬영에 바쁘다.

오후 일정은 광법사와 모란봉 방문이다. “평양 시내이긴 하지만 볼 것이 많은 곳이니 서두르자”는 이경철 불자의 의견에 따라 모두들 차량으로 올랐다.


평양=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