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회 창립 재가불교 기틀 마련
지난 8월 31일 서울 남산에 위치한 대원사에서는 고 장경호(1899~1975) 거사를 뜻을 기리기 위한 작은 추모행사가 열렸다.
입적 28주기를 맞아 가족들과 후학들이 함께 한 이날 행사에서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은 “거사님은 재가불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위대한 선지식”이라며 장경호 거사를 회상했다.
장 거사는 일제 암흑기를 살며 역경에 굴하지 않고 동국제강 등 기업을 통해 한국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대원회와 대한불교진흥원을 비롯해 오늘날 불교방송이 있도록 토대를 마련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1899년 9월 10일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17세 때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며 불교에 귀의했다는 그는 한 평생 재가수행자로의 삶을 일관되게 살았다.
재가 수행자 삶 일관
1919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3.1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1년간 일본으로 피신한 뒤 다음해 귀국해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3.1운동의 좌절 속에서 삶의 좌표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던 장 거사가 마침내 불경을 탐독하며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사람노릇 하겠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그는 술, 담배, 고기 등을 일체 금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죽는 날까지 실천한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통도사 동안거 결제에 동참해 구하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이제 나는 상업에 종사하여 크게 돈을 벌리라.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부처님께 회향하리라”는 큰 서원을 세웠다.
이후 그의 훗날 고백에서처럼 점심 한 끼 사먹는 일 없이 용돈 한 푼 허투루 쓰는 일 없이 억척스레 돈을 모았다. 재활용품을 수거해 판매하던 일이 커져 54년 동국제강을 시작으로 부산제철소, 동국건설 등을 잇달아 설립했고 큰 성공을 일궈냈다.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고 사치품이나 소모품을 만드는 대신 국가의 근간사업에 치중하며 온 힘을 기울인 혜안(慧眼)과 땀방울의 결과였다.
전재산 30억 불교계 기증
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동안거 때면 꼭 동참해 스스로의 지혜를 밝히는 일을 60세까지 계속했으며, 불서보급사 등 출판사를 만들어 수백 권의 경전과 해설서 등을 펴내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사비를 털어 재가불자들이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는 대원정사를 건립하는 한편 입적을 몇 달 앞둔 75년 2월에는 자신이 서원했던 대로 평생 모은 재산 30억6300만원을 불교계를 위해 희사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사진설명>1972년 대원정사 개관 기념법회에 참석한 장경호 거사.(맨 왼쪽)
개인의 온갖 욕망을 접고 대신 보살의 원력으로 살았던 장경호 거사. 그의 삶은 재가자들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수행자의 삶의 살 수 있으며, 원력만 있으면 중생을 위해 큰 불사를 할 수 있음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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