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를 산다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괴로워라.’ 우리 어머니께서 자주 읊으시는 러시아 문호 푸시킨 시의 한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미래, 아니면 과거에 살고 있다.

어릴수록 미래에 더 많이 살고,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더 많이 사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미래를 향한 상상 속에 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6~7살 때쯤 공주님을 꿈꾸던 나이다. 순정 만화를 읽으면서 미래의 왕자님을 꿈꾸었고, 핀란드 헬싱키에서 연인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꼭 커서 헬싱키에서 연애를 해야겠다는 공상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이 시간만 끝나면 점심 시간이다’ 라던가, ‘이번 중간고사만 끝나면 뭘 해야지’ 등등의 생각을 주로 하면서 살았다. 대학에서는 대학 졸업 후 뭘 할까 하는 것이 최대 고민이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게 된 후부터는 ‘일요일까지 이틀 남았다’ 등등의 자질구레한 기대가 나를 매일 아침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끔 한다. 나는 내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살고 있는지 차마 깨닫지 못했다. 적어도 어느 도반이 나에게 지광 스님의 말씀을 전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광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과거랑 미래에 사느라 현재는 3분의 1도 채 살고 있지 못하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렇다. 정말 그렇다. 도대체 나는 이 현재를 몇 퍼센트나 살고 있을까. 참선을 하려고 앉아있는 시간마저도 구름 속에 머리를 반쯤 파묻고 있는 내가 아닌가.

가끔, 아주 가끔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주위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전혀 깨닫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누구나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들이, 그 색깔들이 얼마나 생기 있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느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해 주는지, 우리 집 강아지 눈동자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일인지도.

깨어있는 삶, 현재를 충분히 사는 삶에 대한 노력으로 이생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나는 너무 욕심쟁이인 걸까.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