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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공예가 윤기현 씨

칠보의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깨달음의 환희를 노래하다


칠보는 불교 경전 곳곳에 등장하듯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뜻하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귀한 보물을 상징한다. 어쩌면 천상천하에서 가장 고귀하신 부처님을 향한 중생의 마음이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절정의 환희심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봄바람 맑은 경기도 광릉내 봉선사 근처의 작은 마을. 마을 앞 은빛이 눈부신 샛강에는 먹이를 찾는 두루미 두 마리가 날개를 접은 채 두리번거리고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인상적인 장면만은 못해도 4층 윤기현(尹基炫, 49세)씨의 보현공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봄날의 샛강에는 생기와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이 보현공방은 1978년부터 시작해서 25년 째 그이가 심취해온 칠보공예 작업실이다. 또한 유일한 혈육인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살림집이기도 하다. 칠보로 만든 작품과 재료들이 거실과 방에 촘촘한 가운데 유독 100×40cm 크기의 관세음보살 액자가 눈에 띄었다.

‘환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얼핏 보면 평범한 불화 같은데, 자세히 살피면 구리판에 색색의 유약을 발라 구워낸 칠보공예 작품이다. 화려한 듯 하면서도 고고하고, 단청톤이 주는 원색의 강렬함과 동시에 우아한 품격이 느껴진다.

“이런 종류는 처음 보셨을 거예요. 칠보로 만든 불교 공예품은 가끔 있어도, 불화를 칠보로 표현한 것은 저도 아직 못 봤거든요. 제가 처음 시도한 셈인데, 생각보다 느낌이 괜찮아요. 대형 작품을 만들어서 인연 닿는 절에 보시할 생각이예요.”



서른여섯살에 미대 입학, 칠보 창작에 몰두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태어난 그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성신여고에 진학해서는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줄곧 미술대학 입학을 꿈꾸며 참가하는 대회에서마다 상을 휩쓸어 왔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재주를 아끼는 주위의 배려로 당시 화신백화점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아버지, 그리고 동양 자수 솜씨가 남달랐던 어머니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유복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한 건 그이가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때. 어머니마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은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끼를 버리지 못한 그이는 이방자 여사에게서 사사한 이혜숙 선생을 만나 칠보공예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88년 산업대 금속공예과에 입학한다. 서른여섯살이 되던 해였다.

이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금속디자인을 전공, 1996년 ‘사리함 이미지의 방향기(芳香器) 조형연구’란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그 논문을 통해 사리함의 종교적 예술적 의미를 재조명했으며, 사리함 이미지를 이용해서 칠보 기법으로 방향기를 제작, 눈길을 끌었다. 방향기의 제목은 ‘발원’. 전통예술 기법으로 재창조한 방향기는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최초로 칠보 기법의 사리함 제작



칠보는 불교 경전 곳곳에 등장하듯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뜻하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귀한 보물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칠보는 단순히 세속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천상천하에서 가장 고귀하신 부처님을 향한 중생의 마음이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절정의 환희심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존경하는 분께 바치는 것은 가장 화려해야 했고, 그래서 태국이나 티벳은 물론 과거 우리 역사에서도 그 시대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 불교 예술이었다.

윤기현씨의 마음도 그렇다. 칠보 공예품은 금, 은, 구리 등의 금속 바탕에 유리질 유약을 발라 700∼820도의 고온 가마에서 굽는 과정을 거치는데, 색상이 아름답고 화려해서 금속공예 중에서 고급에 속한다. 불전 성물 즉 다기나 촛대, 향로 등을 비롯해서 불교 용품들을 이런 칠보 기법으로 최고로 정성스럽게 그리고 다양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1985년 전승공예 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면서 이런 꿈은 한발씩 현실에 가까워진다. 두 개의 사리함을 출품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칠보 사리함이었다. 사리함으로서는 최초의 칠보 공예품이었다. 은이나 금 입사 기법만을 생각해 왔던 때였으니 평소의 이런 발원 없이는 생각해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이런 생각을 품은 뒤부터는 법당의 성물들이 더욱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형태로 보아 국적이 불분명한 향로, 조악한 기법의 촛대 등이 불전에 선 그이를 몸둘 바 모르게 한다.

“안타까워요. 죄송스럽기도 하구. 그럴 때면, 한 스님이 ‘어떤 법당에서 황동 향로를 봤는데, 모양은 중국 것에다가 나무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향로였다’ 며 탄식하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다양한 불교 공예품 제작이 꿈”



그래서 한 가지씩 칠보 기법의 불교 공예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칠보 사리함, 촛대, 노란 호박이 중간중간 박힌 칠보 합장주, 연꽃 봉오리가 우아한 향꽂이, 사리함 이미지의 방향기, 그리고 앞서 말한 ‘환희’도 그 중에 들어 있다.

박태준 씨가 포항제철 대표로 있을 때, 그이로부터 특별 주문을 받아 여러 가지 칠보 공예품들을 제작해준 적이 있다. 박태준 씨는 중요한 외국 바이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선물을 고민하던 중에 그이의 작품을 선택했는데, 받는 이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그 때 그이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관광사찰 어느 곳을 가도 그 모양이 그 모양이고, 품질도 조악한 우리 불교 기념품들. 어떤 유명 관광사찰을 가도 그 사찰의 특색을 살린 그럴 듯한 불교 공예품이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해인사에 가면 장경각, 통도사에 가면 금강계단 등 특색있는 공예품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딜 가도 똑같은 물건들 뿐이잖아요.” 그런 기획 상품을 만들기엔 그이는 작은 개인일 뿐,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자신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물 흐르듯 헤쳐나갈 방법밖에는 없다.

“요즘은 불자들이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기도용품함을 구상중이예요. 불사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서 형편이 되면 어려운 사찰 불사에 쓸 생각이구요.”그이는 얼마 전부터 개금하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마음으로 생각해도 행하지 않으면 헛되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부처님 옷 입히는 불사에도 동참하고 싶어서이다.

눈에 보이면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몸으로 행하게 될 것이라는 윤기현 씨.

그래서 보현공방의 벽에는 칠보 작품들과 함께 ‘반야심경’을 비롯해서 금강경 4구게 등의 글귀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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