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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환

기자명 허성욱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삶이 나를 살고 있더라

오랫동안 나는 나의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참 고단한 나날이었다. 살아야 할 삶을 그려 가지고 그걸 얻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뒤 내 인생에 변화가 일어났다. 비로소 나는 편안히 휴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신비로운 어떤 힘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온전하고 영원한 삶’이 나를 살고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내 자신이 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졌을 때 문득 나타난 해방감일 뿐이었다.

참으로 삶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깊고도 깊다. 처절하게 한 생을 산 사람이 죽음 앞에 서서 한 평생의 허망함을 아무리 말해도 아직 잡아야 할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그것은 강 건너 불이다. 내가 그 허무의 벼랑에 쫓기어 서기까지는 그저 바라볼 남의 일이니까.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알 수 있다. 애써 살고도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결핍의 갈증 속에서 헛물만 켰을 따름이다. 이것저것을 해 보아도 결코 가시지 않는 인생의 허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허무, 소외, 전쟁, 폭력 등 온갖 번뇌는 삶의 집착에서 연유하지 않겠는가.

이제 태도를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삶의 집착을 버리고 ‘온전하고 영원한 삶’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이것은 운명에 대한 복종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젊음이건 늙음이건 건강이건 병이건 그 모든 나의 모습을 묵묵히 수용하는 일이므로 그보다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위가 어디에 있으랴.

더 이상 우리는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도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그 곳에는 크나큰 휴식과 무한한 가능성이 함께 있는 까닭이다. 정말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여기―‘온전하고 영원한 삶’이 우리의 모습을 살고 있는 곳―인 까닭이다.


허성욱 suhama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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