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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만배 수행 이우열 거사

"절하면서 욕심-번뇌 버렸어요"

새벽 3시 30분. 산사의 하루는 새벽예불을 알리는 도량석 소리로 이미 움직거리는 시간이지만, 세간의 삶에 지친 뭇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아직도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잠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우열(45. 천담) 거사의 하루는 이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스님이라면 모를까. 아내와 세 아이를 둔 이 거사는 첫 새벽 봉영사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절을 올린다. 일배, 이배, 삼배, 사배…. 아직 어스름도 가시지 않은 경내에서 그렇게 이 거사의 절은 소리 없이 계속된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면 어김없이 경기도 남양주시 봉영사에 발을 들이는 이 거사는 벌써 5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봉영사를 찾고 있다. 새벽 예불과 간단한 독경, 참선 후 시작되는 이 거사의 절은 두어 시간 가량 계속된다. 절을 하며 아침을 맞은 이 거사는 아예 공양간에서 아침밥까지 챙겨 먹은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느 남자들처럼 직장으로 향한다. 무려 1300배를 하고나서다. 봉영사에서 이 거사는 '절하는 거사님'으로 통한다. 새벽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봉영사에서 이 거사와 마주칠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절을 하기 위해 절을 찾는 사람처럼.



봉영사의 자랑, '절하는 거사님'

누구인들 세상살이가 녹녹하랴 만은 이 거사의 삶 역시 평탄치도 순탄치도 않았다. 1990년 33살에 8살 아래의 '꽃같이 예쁜' 부인과 결혼한 이우열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야말로 안 해본 것 없이 다해 본 '가장'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노부모님을 모시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다단계 사업에도 빠졌었고, 장사도 했고, 그럴듯한 사업에도 손을 대 보았다. 그러나 번번이 그에게는 실패만이 돌아왔다. 살림은 여전히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본행도 감행했다. 96년 5월 어린아이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이 거사는 일본에서 1년 6개월간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97년 말 귀국 후에도 살림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 고생, 몸 고생이 겹쳐서일 겁니다. 귀가 멍멍해지더군요. 청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고, 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저 집착을 버릴 수 있다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서 시작한 공부였다. 겨우 삼배나 할 줄 알았지 수행이 뭔지도 몰랐다. 절에 있는 책을 이것저것 읽는 것이 공부였고, 스님이 골라주는 책을 읽는 게 과외였다. 그렇게 하기를 몇 달. 책에서 말하는 '수행'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불교라는 생각에서였다.

"기왕 할거라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겁도 없이 100만배 서원을 세웠다. 98년 4월 26일이었다. 이 거사는 지금도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100만배를 하면 불교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100만배의 인연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들었지만,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직장에 다니는 이 거사는 퇴근 후 절을 하기로 했다. 퇴근하면 집에 들려 간단히 저녁을 먹고 9시까지 봉영사로 올라갔다. 9시면 잠자리에 드는 스님들의 생활에 맞춰 이 거사도 봉영사 한켠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12시면 일어나 절을 시작했다. 새벽까지 꼬박 밤을 세우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미련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3시간 새우잠 자기 8개월만인 98년 12월 4일 이 거사는 100만배를 회향했다. 하루 평균 4500배를 해낸 것이다.

"시작하고 몇 달간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다리 아픈 것은 둘째였습니다. 잠이 모자랐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계속되는 사업 실패에 100만배 서원

수행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까웠다. 그렇게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이었지만 100만배를 회향할 때 즈음 이 거사는 환희심에 빠져들었다.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 적어도 돈이 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졌죠."

이 거사의 100만배 회향은 봉영사 전체가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이 거사에게 100만배 회향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되었다. 100만배에 200만배를 더해 300만배를 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이다.

절을 시작하던 첫 8개월처럼 밤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었고 나를 눌러 조복 받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절을 한다. 어느새 270만배를 넘어서고 있다. 내년 4월까지 300만배를 회향할 계획이다.

세간의 사람들은 이 거사가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해서 무슨 가피를 얻었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가피도 얻었다. 이 거사가 절 수행을 한 인연으로 만난 이웃의 도움을 받아 부인이 조그만 악세사리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시세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요즘엔 수출까지 하니 이 거사는 부인의 사업 수단에 혀를 내두른다. 이 역시 부처님의 가피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거사는 더 좋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다.

"그게 뭐냐구요? 글쎄 아직은 제가 함부로 말하기가 힘듭니다. 공부가 다 되었다면 모를까. 좀더 공부가 되었다는 확신이 설 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공부를 해볼 계획입니다."



"300만배 회향 뒤 출가" 결심

그는 출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나이도 많고 부인과 아이들도 있지만, 그는 출가를 꿈꾸고 있다. 불법의 인연을 만나기가 쉽지 않는데, 그 인연을 만났으니 공부를 마치고 싶어서이다. 공부를 제대로 마치려면 출가 수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부인과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아이들 아빠가 공부를 시작한 이상, 제대로 그 공부를 끝냈으면 합니다. 출가를 한다는 것이 가정을 떠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아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스님은 인천의 스승이라던데, 저 이가 출가해서 스님이 된다면 모든 이들의 스승인 동시에 아이들의 스승이 되기도 할테니까요."

이 거사가 얻은 것이 어쩌면 부인의 이런 생각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 가족" 이 거사 수행 돕는 부인 김지수 씨



한 여자의 남편이며 세 아이의 아빠인 이 거사가 수행을 시작하고 출가까지 계획한다는 말에 무엇보다도 아내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남편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족이니까요."

아내는 이 거사의 수행에 있어 가장 큰 후원자인 셈이다. 남편이 불교 공부를 하며 100만배를 하고 있을 때에도 아내는 남편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00만배를 통해 그 동안의 힘들었던 일도 떨쳐 내고 자신감도 갖게 되리라 생각했다. 솔직히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부인의 마음도 바뀌어 갔다.

"굳이 변한 점을 찾으라면 남편이 생활에 여유를 갖게 됐다는 점이죠. 가족이나 남들을 대하는데 있어 마음이 넉넉해진게 가장 큰 변화였어요."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도 김 씨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빠가 하고 있는 공부와 수행이 아빠에게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일도 김 씨가 직접 나섰다.

"내가 사업을 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남편의 수행이나 출가 희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부부 관계가 돈만으로 묶여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부부는 그런 관계가 아니잖아요."



글·사진=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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