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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불교교리 - 부처님의 십대제자 : 우바리(優波離)

신분의 차별 뛰어넘는 평등정신 ‘상징’



불공정한 처사들

지난 시드니올림픽 때, 샛별처럼 영롱하게 우리의 가슴에 와 닿은 신데렐라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강초현이라고 합니다. 이 선수가 최근 국가대표선발시합에서 무려 18위를 하고도 2위를 한 선수의 양보를 받아서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된 것에 대해서 공정하지 않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공정논의가 대우자동차노동자 처리문제로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변호사와 함께 법원의 판결을 받아서 자신의 삶의 터로 돌아가는 일단의 근로자에게 광주사태를 연상시키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폭력이 행사됐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특전사 대원이 곤봉을 휘두르는 장면과 부천에서 정경이 발로 차는 장면이 서로 겹쳐져서, 동일한 사람이 같은 곳에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할 말이 많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의사들의 불법적 파업에는 어머니가 갓난아이 돌보는 심정으로, 그토록 이해심을 발휘했던 나라님들이, 이번에는 어인 일로 그토록 오랫동안 발휘했던 인내심을 뒤로 한 채, 온 국민에게 피와 공포를 가져다 주었던 곤봉을 그 손에 다시 잡았는가 하는 점은 의문입니다. 의사들이 그동안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서 파업했었지만, 그 강렬한 정도는 해고노동자의 처절한 절규에 반의 반도 못 따라 올 겁니다. 아마 의대를 나와서 레지던트가 되어 우리 선배는 잘 먹고 잘 사는 데, 우린 뭐냐 하는 정도의 울분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의사가 굶어죽기야 하겠습니까? 그에 비해, 해고근로자의 아픔은 이건 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는 겁니다. 이들의 하소연은 정경의 군화발로 막고, 공부한 만큼 대우해달라는 의사들의 말에는 너무도 쉽게 굴복한 위정자에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



신분제의 굴레

이런 신분에 따른 불공정한 처사는 과거에는 더 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신분제도가 있었으니까요. 부처님이 활동하던 당시의 인도에도 4성계급이 있었고, 그게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이런 계급제도는 지나가는 똥개가 똥 싼 것과 같이,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비판하였고, 불교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고 10대제자에서 이런 흐름을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계율을 지키는 데 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은 우바리존자입니다.



이발사였던 우바리 존자

이 존자는 이발사였다고 하는데, 이발사가 요즘의 상식이 아니라 당시의 신분질서에서 보자면, 고귀한 지위에 있지 않았던 건 분명합니다. 이런 분이 부처님의 10대제자로 우뚝 선 것은 불교교단의 평등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바리존자는 석가족의 여러 왕자들이 부처님에게 출가하러 나갔을 때, 함께 갔다가, 이 고귀한 신분의 왕자들이 모든 기득권을 버린 채 도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킨 것을 보고, 이 분도 발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냥 미화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분의 출가에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있었습니다. 왕자들이 부처님에게 몸을 의탁하면서, 값비싼 옷을 우바리존자에게 주었는데, 이걸 들고 왕성에 돌아갔다가 왕자들이 출가한 것에 연루되어 무슨 괘씸죄에 걸려들지 모르는 열악한 상황이 헤하고 입을 벌리고 있던 형국을 감안했던 겁니다. 우리의 국가보안법 연좌제를 연상하면 좋을 듯합니다. 이래도 안 좋고 저래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서 이분도 출가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평등성

그러자, 다른 석가족의 왕자들이 이분을 먼저 스님으로 삼아달라고 청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등장합니다. 승가는 세속의 지위를 따지지 않고, 언제 출가했는지를 가지고 승가에서의 위치를 정하기 때문에, 세속에서는 낮은 자리에 있었던 우바리존자를 승가에서는 왕자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게끔 배려한 것입니다. 불교교단의 생명력은 바로 이러한 평등성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평등을 추구하는 참된 정신을 불교교단이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고, 한 걸음 양보해서 불교교단이 해내지 못한다면 뜻 있는 불교인이라도 나서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우바리존자의 아름다운 기상이 다시 살아 숨쉬어 가뭄 속의 단비마냥, 이 땅에 차분히 스며들 그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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