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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에서는 낙엽마저 지심귀명례 하는구나

기자명 정찬주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부딪치면 생가지처럼 부러질 것 같았던 대학시절의 나는 방학만 되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다가 쌍봉사에 머무르곤 했다. 절에 들어서면 들끓던 마음이 편해졌다. 흙탕물이 가라앉듯 마음이 맑아졌다. 달마가 혜가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주었듯 선가(禪家)의 법문 중에 안심법문(安心法門)이 최고라고 했던가. 온갖 생각으로 몸살을 앓던 젊은 나에게 산 그림자에 접힌 쌍봉사는 헐떡이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어머니의 품 같았던 것이다.

<사진설명>쌍봉사 극락전이 단풍 화염에 휩싸였다. 이 단풍나무는 20여 년전 대중전에 불이났을 때 화마가 극락전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아낸 호법신장이다. 몸을 불살라 극락전을 지켜낸 그날의 모습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난 자리가 육신의 고향이라면, 당연히 참나를 찾아 거듭 태어나는 정신의 고향도 있을 법하다. 쌍봉사는 내 영혼을 맑게 하는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방황하던 끝에 찾은 젊은 날의 쌍봉사도, 풀잎 끝의 이슬처럼 몸을 던져야 하는 초로(草露)의 나이가 되어 쌍봉사 부근에 정착해버린 일도 인연(因緣)이 엮어낸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부모님 사십구제를 지내고 싶다는 친구의 부탁을 주지스님에게 전해주기 위해 쌍봉사 경내에 와 있다. 경내는 단풍이 한창이다. 머잖아 낙엽이 될 나뭇잎들이 자신을 노랑 빨강으로 간절하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불붙는 듯한 단풍을 보고 있자니 문득 가슴이 절절해진다.

사방 한칸 ‘초소형 대웅전’의 수수함

주지 관해(觀海)스님의 염불 소리에도 가을이 깊어지는 느낌이다. 지장전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염불 소리 중에서도 유독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란 구절이 가슴을 적신다. 경내의 모든 존재들이 몸을 낮춘 채 지극한 마음으로 지심귀명례 하고 있음이다.

주지스님이 지장전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또다시 경내를 둘러본다. 목탑 형식의 대웅전은 20여 년 전에 전소되어 복원했는데 서까래 등이 썩어 다시 해체보수 불사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방 한 칸의 대웅전인데 산골 처녀처럼 수줍은 모습의 법당이다. 나에게는 첫사랑처럼 아리고 순수한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사진설명>대웅전.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나는 이 작은 법당에서 비로소 부처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학시절 쌍봉사를 처음 찾았을 때 절의 식구는 나까지 세 사람뿐이었다. 주지스님과 공양주보살, 그리고 나였다. 나는 가끔 불목하니처럼 법당 청소를 하면서 부처님의 어깨나 손바닥에 얹힌 먼지를 닦아드리곤 했는데, 그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당부하셨던 것이다. ‘늘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부처’라고.

불사 중이므로 대웅전의 부처님은 지금 호성전(護聖殿)에 모셔져 있다. 일제시대 때의 사진이 발견되어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지만 호성전도 아름답기로는 목탑 형식의 대웅전 못지 않다. T자형 아담한 건물인데 앞쪽의 누각과 뒤쪽의 맞배지붕이 결합된 어느 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꼬마 전(殿)이다.


단풍나무는 화염 막은 ‘호법신장’

부처님은 호성전으로 옮겨진 이후로도 예나 지금이나 계속 미소를 짓고 있다. 옆에서 부처님을 시봉하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잘 알다시피 아난은 부처님을 가장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모셨던 존자이고, 가섭은 부처님의 제자 중에 수행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존자이다. 그런데 나는 두 분의 존자를 보면 문득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끄럽다. 아난처럼 부드럽고 원만하지도 못하고 가섭처럼 매사에 원칙대로 철저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원만과 철저가 자(慈)와 비(悲)의 동의어로 다가온다.

나는 그 어느 것에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섭의 턱에 점점이 그려진 수염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치열하게 수행했으면 수염 깎을 시간도 없었을까. 가섭의 수염은 이제 타성에 젖고 방일해지려는 나에게 따끔한 회초리가 되고 있다.

<사진설명>'꼬마전'으로 통하는 호성전.

쌍봉사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법당이라고 말하는 극락전은 경내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극락전은 말 그대로 지극히 안락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마저도 편하게 느껴진다. 어떤 날은 돌계단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쉬고 싶어진다. 앉아 있으면 돌계단 양편에 서 있는 삼백여 년 된 단풍나무가 할머니처럼 가만히 어깨를 감싸주는 것이다.

나는 극락전의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나무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다고 믿는다. 단풍나무야말로 극락전 부처님을 지켜낸 신장(神將)인 것이다. 20여 년 전 대웅전이 불탈 때 돌계단을 가로지르는 단풍나무 고목 한 가지가 극락전으로 뻗치는 불길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을 얻기 위해 몸을 잊는 위법망구의 정신은 말없는 나무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감선사 부도 가는 길에는 차꽃이 만발해 있다. 차꽃은 대부분 향기가 없는데 쌍봉사의 차꽃은 코를 벌름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진한 게 특징이다. 그러나 여러 명이 웃거나 떠들고 갈 때는 향기가 숨어버리니 조심할 일이다. 혼자서 행선(行禪)하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귀로 들린다(聞香)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 나비나 벌처럼 가까이 다가가서 꽃수술에 코를 대고 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신라 경문왕을 불문(佛門)에 귀의케 하고, 해상왕 장보고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당나라 유학승 철감선사의 부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석조물이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 최완수 선생이나 유홍준 교수 등 학계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아도 미의식의 차원을 넘어 종교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득 불문에 귀의하고픈 마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사진설명>좌>석조 미학의 백미 철감선사 부토탑.우상>아난-가섭 존자의 시봉을 받고 계신 300년 넘은 목조 부처님.우하>가을 햇살에 안긴 경내 밖의 부도탑.

행선하는 발끝엔 차꽃향이 따른다

부도는 극락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다. 그런가 하면 옛 사람의 생각을 헤아려볼 수 있는 보물이기도 하다. 옛 사람은 극락의 위치를 용이 움직이는 구름 위에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구름 위에는 불법을 지키는 사자가 있는데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지 자신의 뒷다리를 물고 있거나 졸고 있다. 연꽃이 피어 있고 천인(天人)들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다. 긴 천을 손에 쥐고 춤을 추는 동작은 오늘날의 살풀이를 연상시키고, 악기 중에는 허리가 잘록한 장구가 보인다. 조선시대 때 편찬한 「악학궤범」을 보면 장구는 송나라 때 들어온 악기라고 설명되어 있으나 통일신라 경문왕 때 만들어진 철감선사의 부도에 새겨져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암키와, 수키와, 서까래, 부연 등으로 조각된 지붕은 오늘의 절 건축 양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고려의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만 보았던 배흘림기둥이 철감선사의 부도에도 나타나 있으니 눈길을 뗄 수 없다. 부도 옆에 엎드려 있는 탑비의 거북이 앞발의 모양새도 정중동(靜中動)의 내면이 된 바 신비롭기만 하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차갑다. 늦가을로 달음박질하고 있다는 증거다. 젊은 날의 초의가 쌍봉사에 들러 남긴 시(詩)에 나오는 대숲이다. 초의는 철감선사 부도 가는 길을 휘어진 대나무들이 막고 있다고 노래하였던 것이다.

부도를 보고 내려오니 마침 친구가 와 있고, 주지스님도 염불을 끝내고 지장전에서 나와 있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평상 위에 쌓인다. 친구가 사십구재를 부탁하자 주지스님이 말한다.

“재란 좋은 언행으로 나를 맑히어 돌아가신 영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입니다. 스님의 염불보다 재주의 맑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절에서 재를 지낸 후에도 집에서 아미타불을 단 몇 분이라도 일념으로 외면 영가의 업이 씻어져 극락 왕생할 것입니다.”
평상에 떨어진 낙엽이 스님과 친구의 말을 엿듣는 것 같다. 알아들었다는 듯 휘적휘적 어디론가 굴러가고 있다. 육조 혜능이 말했던가.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고 있다(落葉歸根). 단풍은 물론이고 낙엽마저 지심귀명례! 하는 쌍봉사의 가을날이다.


글·사진=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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