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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노동자 법회 여는 와치 싸라 함두루 스님

기자명 남수연

“여관-기숙사 전전해도 법회 열어 행복”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합법적인 고용’을 위해 정부는 11월 16일까지 외국인 노동자 일제 등록을 실시했다. 이와 동시에 체류기간 4년을 넘긴 노동자들은 ‘강제 추방’을 당해야 했다. 그야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르고 뺨치는’ 혼란의 와중에 스리랑카 노동자 다라카 씨가 11월 11일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96년에 한국으로와 천막공장에서 일한 다라카 씨는 체류기한이 4년을 넘긴 ‘강제 출국 대상자’였다. 산산이 흩어져 버린 ‘다라카’의 주검은 한 기독교 단체에 의해 수습돼 장례식을 치렀다. 십자가가 놓인 다라카의 장례식장. 그러나 붉은 남방 가사의 한 스님이 맨 앞에서 관을 들었다. 그 스님은 지난 9월 20일 한국에 들어온 스리랑카의 와치 싸라 함두루〈사진〉. 스님은 다르카의 주검 앞에서 좀더 일찍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사진설명>한국 지리에 낯선 함두루 스님은 지하철을 이용해 의정부, 안산, 김포 등을 돌아가니며 주말마다 법회를 보고 있다. 스님은 "몸은 피곤하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방한인데, 다시 온 이유는.

올 3월에 한국에 관광차 왔었다. 당시 스리랑카에서 함께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재가 불자 한 명이 한국에 노동자로 와 있었는데 그와 연락이 됐다. 그를 통해 한국에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고된 상황에 대해 알게 됐다. 그들을 돕기 위해 지난 9월 20일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말하는가.

스리랑카는 인국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이다. 한국에는 6천여 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와있는데 99%가 불교신자이다. 스리랑카 인들에게 불교는 생활의 일부다. 사찰과 스님은 그들의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스승이며, 상담자이며, 친구이다. 언제나 찾아와 고민을 말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사원이고 스님이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온 스리랑카 인들은 하루 아침에 생활의 일부분을 잃어버리게 됐다. 이곳에서는 그들을 위해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기도해줄 스님도 사찰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의지처가 필요하다.
물론 한국에는 많은 사찰과 스님이 있지만 스리랑카 한국 사찰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포천, 의정부, 김포, 안산, 성남을 찾아다니며 주말마다 법회를 갖는다. 김포와 안산에서는 그 지역 사찰의 도움을 받아 주말에 반나절 씩 법당을 빌려 쓰고 있다. 아직 법당을 구하지 못한 포천이나 의정부 성남 등지에서는 그곳 노동자의 집이나 여관방을 빌려 법회를 본다. 스리랑카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양해를 구해 공장에서 법회를 보기도 한다. 대부분 두 평 남짓한 노동자들의 숙소나 여관방에서 법회를 볼 때는 30∼40여 명이 빼곡히 둘러앉아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법회 참석을 희망하지만 장소가 좁아 더 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리랑카 교단에서 지원을 받거나 더 많은 스님들이 올 수는 없는가.

스리랑카에서 한국은 ‘꿈’의 나라다. 한국에 가서 일을 하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코리아 드림’의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지난 3월에 석 달간 한국에 머물며 이곳에 와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잘사는 아시아 국가라는 생각만 갖고 돌아갔을 것이다. 또한 스리랑카와 경제 수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스리랑카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실질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제 경우에 스리랑카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며 받은 월급이 고작 60달러였다. 이렇게 경제 수준의 격차가 큰데 어떻게 이곳에 지원을 하겠는가.


이곳에서 직접 본 현실은 어떠했나.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인 의지처가 없다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대부분 불자들이다. 그런데도 주말이면 교회를 찾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다친 곳을 치료하거나 법률적인 조언을 구하거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곳이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도움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찾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다라카’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조금만 일찍 그를 만났으면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할 종교적인 의지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불자였음에도 죽은 후에 십자가가 그려진 관에 눕혀졌다. 그를 도와준 기독교계에 감사하만 출가자로서 그를 위한 적절한 의식을 해주지 못해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낯선 한국에서의 생활 견딜만 한가.

현재 파주 보광사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 사찰의 전통에 따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올린 후에는 1, 2시간정도 참선을 한다. 공양 후에는 마당 쓸기 울력을 한다. 주중에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한국어 공부에 사용하고 몇몇 NGO단체 관계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주말과 휴일에는 각 지역을 다니며 법회를 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활용한다. 토요일에 한 곳, 일요일에 두 곳을 찾아간다.

특히 토요일에 법회가 끝나고 나면 그들과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다 밤을 세기도 한다.


한국 불교계가 도와 줄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법회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의료시설이나 법률적 도움은 비교적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의지처는 오직 불교계에서만 도와줄 수 있다.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지역의 사찰에서 일요일이나 토요일 등에 반나절이라도 법당을 빌려준다면 인근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법회를 볼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4, 5곳 정도라도 법회를 볼 수 있는 사찰이 생긴다면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와치 싸라 함두루 스님 연락처:019-822-2655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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