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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 스님

“나누려는 그 마음, 누군가에게 희망이요 버팀목입니다”

건대 일감호서 ‘수상관’ 15살에 “도 닦자” 결단
고교 때 두 번 해인사행 “졸업장 갖고 와라” 퇴짜
1년 방황 끝 해인사 입산 ‘꿈이 현실’로 감동의 예불
소원지 수익·연못동전 모아 ‘천년향기 나눔통장’ 적립
자문위 통한 소통·담론 복지재단 청사진 그릴 것

청소년 시절 결단한 ‘출가’에 후회는 없는지 여쭈니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해인사에서 처음 들었던 새벽예불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해인사 대중의 새벽예불 소리가 가야산을 휘돌았다. 어제 갓 입산한 청년도 대적광전 한 구석에서 절을 올렸다. 예불은 태어나 처음이었기에 스님들이 절 할 때마다 곁눈으로 보아가며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었다. 어색한 몸짓의 연속이었지만 불보살을 향한 수행자들의 찬탄 소리가 깊어질수록 환희로운 경이감에 사로잡혀 갔다.  

학창시절, 서울 성수동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건국대 부속중학교에 가려면 ‘일감호(一鑑湖)’를 지나야 했다. 주자(朱子·1130~1200)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첫 구절 ‘일감(一鑑)과 활수(活水)’에서 따온 것인데 ‘거울처럼 맑은 물’이라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도 호수를 지날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념에 젖곤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중학교 2학년 10월의 아침. 학교로 향하던 발길 멈추고 호숫가에 앉아 바람결 따라 찰랑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중천의 해가 호수에 뜰 즈음 책가방에서 도시락 꺼내 점심하고는 다시 그 물결 바라보다 서쪽으로 지는 해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7일 동안의 등굣길은 일감호에서 끝났다. ‘원효’는 알아도 ‘싯다르타 태자’는 몰랐던 15살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정했다.

‘스님이 되어 산에 들어가 도를 닦자!’

친구 한 명 데리고 청평으로 향했다. 더 멀리 가지 못했던 건 주머니 속 차비가 딱 거기까지만 허용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동행도 입산 후 벗어야 할 세속의 옷을 어머님께 전하기 위함이었다. 청평역 슈퍼마켓 주인에게 절 있는 곳을 묻고는 곧장 찾아 나섰다. 일러준 길 따라 20여분 걸은 후 줄 배를 타고 천을 건너 절에 이르렀다. 공양주 보살님으로 보이는 분이 물었다.

“어인일로 왔나?” 
“스님 되려고 왔습니다.” 
“몇 살이지?” 

노심초사였던 친구가 즉답했다. “중학교 2학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귀가 후 친구의 이실직고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나름 출렁이는 마음을 가라 앉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도 가을이면 ‘출가 병’이 도지곤 했다. 유수의 사찰을 수소문 했는데 한결같이 해인사를 꼽았다. 2학년 겨울과 3학년 가을에 연이어 해인사를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교무 소임을 보는 듯한 스님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서로 다른 스님이었음에도 전하는 말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았다. 

“평생 중노릇 할 터인데 뭐가 그리 급해. 졸업장 갖고 와라.”

발길 돌릴 때마다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아들의 가출이 이내 출가로 이어질 것이라 직감한 어머니는 그의 졸업장을 감췄다. 정말이지 그때만 해도 졸업장 없이는 출가할 수 없는 줄 알았다. 1년의 방황 끝에 해인사를 다시 찾았다. 행자복도 입지 못했지만 정성을 다해 무릎을 꿇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住一切 ) 승가야중(僧家耶衆)…”

숭고한 예불소리 가슴에 들어차자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15살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법주사 강원을 졸업한 후 송광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 한 보인(普仁) 스님은 2014년 양평 용문사 주지를 맡았다. 그때 선보인 ‘소원지’는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산사에는 수령 1100년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가 서있다. 신라 고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고목을 향한 예경일 터였다. 어쩌면 유응교 시인이 ‘은행나무길’을 통해 전한 마음과도 맞닿았는지 모른다.   

‘…누가 저토록 탐욕을 털어 버리고 의연히 그 자리에 설 수 있을까. 누가 저토록 처절한 추락을 황홀하게 수놓을 수 있을까…’

그 광경 지켜보던 보인 스님의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쳐갔다. 

‘두 손을 모으는 사이 나름의 소원도 빌 것이다.’ 

은행나무 모양의 노란 종이에 자신이 바라는 일을 직접 써 매달게 했다. 소원지 값은 5000원. 수익금은 지역 복지를 위해 쓰인다는 안내문도 새겨 넣었다. 소원과 나눔을 동시에 실현시키는 소원지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천년향기 나눔통장’을 개설해 한푼 두푼 적립해 갔다. 용문사 연못에 던져진 동전도 모두 모아 통장에 넣었더랬다. 신도회와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부처님오신날, 산나물축제, 바자회 등을 통해 들어온 시주금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정재는 모두 지역 복지관 지원금과 장학금으로 쓰였다. 양평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10여년의 경험을 사찰에 접목시킨 결과일 것이다. 

보인 스님의 복지불사 경험을 높이 평가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2018년 12월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로 임명했다. 올해 초 대표이사‧상임이사 제도가 이사장‧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되며 2021년 2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재단 운영의 안정성에 방점을 찍은 변화라 할 수 있는데 책임에 무게가 더해졌다.  

“국민에게 복지는 이제 선택이 아닌 삶의 일부로 다가왔지만,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은 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산하시설 관계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지역사회복지·노인복지·장애인복지·보육·다문화&가족 등의 5개 영역 자문위원회 구성도 마친 상태다. 

“1995년 출범한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그동안 엄청난 인적자원을 축적했습니다. 이제는 그 재원을 적극 활용할 때라고 봅니다. 서로 갖고 있는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토의하며 시대 흐름에 걸맞은 정책을 설정하고 여느 법인과는 차별된 비전을 창출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끊임없이 지속할 때 재단은 답보상태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또한 건강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부는 장애인의무고용제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민간의 경우 상시 50인 이상이면 3.1% 이상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게 진정 무엇일까요? 저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을 통한 정당한 보수로 삶을 영위해 간다는 건, 누군가의 지원금에 의존해 사는 것과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합니다. 정부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도와주면 될 일입니다. 우리 법인 산하시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2020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결과 전년대비 70%가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애인 고용 현황을 시설 신규·재위탁, 시설장 임용평가에 반영할 것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후원 모금활동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비춰보면 비대면 모금활동에 따른 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 캠페인 대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의 인터넷을 활용한 모금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자 후원이나 카카오페이처럼 보다 쉽게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곧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국내외 난치병 환아 모금 미얀마 재난경감사업 지속
재단 소속 산하시설들 장애인 의무고용 정착
‘여러 사람의 안락 위해’  재단 역량 최대한 발휘
‘타인 순종 바라지 마라. 교만해지기 쉽다’ 늘 새겨

재단의 ‘국제협력사업’을 더 확대하고 싶다는 포부도 내보였다. 미얀마의 재난경감사업을 직접 챙길 정도로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데, 미얀마 홍수 피해의 참상을 목도하며 이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재난경감사업은 홍수·지진 등으로 인한 재난에 대비하는 교육과 훈련, 교량 건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미얀마에 놓인 ‘생명의 다리’.
미얀마에 놓인 ‘생명의 다리’.
대표이사 보인 스님은 2019년 미얀마 ‘붓다트리’ 낙성법회에 참석했다.
대표이사 보인 스님은 2019년 미얀마 ‘붓다트리’ 낙성법회에 참석했다.

2016년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미얀마 전역에 내린 폭우와 부실한 댐마저 무너져 양곤을 포함한 8개 지역에서 44만명에 달하는 수재민이 발생했다. 조계종복지재단은 그해 9월 긴급구호단을 파견했고, 이듬해인 2017년 1월 학교와 대피소로 겸용할 수 있는 ‘붓다트리’를 준공했다. 이후에도 미얀마를 향한 지원은 지속됐고, 대표이사 보인 스님은 2019년 12월 붓다트리·교량 준공법회에 참여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다리는 나무 몇 가닥 묶어 이어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폭우 때 두려움에 떨며 그 다리를 건넜을 아이들을 상상해 보세요. 아래에는 엄청난 물살이 굉음을 내고 있었겠지요.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큰 아이들은 보이는데 작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세운 교량은 ‘생명의 다리’입니다. 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 저에게 야생화 한 다발을 선사했습니다. 한국과 조계종에 전하는 진심어린 감사의 향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현재 미얀마 정국이 혼란해 현지 재난경감사업은 잠시 멈췄지만 답사자료를 토대로 한 세부적인 대응책은 늘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난치병 환아 치료비 지원을 위한 3000배.
국내외 난치병 환아 치료비 지원을 위한 3000배.

국내외 난치병 어린이들의 쾌유와 치료비 마련을 위해 2001년부터 매년 진행해 온 3000배 철야정진 모금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대작불사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온라인 모금만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여건만 충족되면 오프라인 모금활동도 적극 펼친다는 계획이다.

“초창기 서울 조계사에서만 봉행됐던 법회가 전국 교구본사와 주요 사찰로까지 확대됐습니다. 2019년까지 총 모금액은 13억2000만원에 달합니다. 445명의 국내외 난치병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2020년에도 환아 21명에게 1억4000여만원을 지원했습니다.” 

강원과 선원에서의 정진 외에는 사회복지 활동에 매진해온 대표이사 보인 스님에게 진부한 질문 하나를 여쭈었다. ‘복지’란 무엇인가?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대승경전에서 ‘보살은 날벌레까지 자비심으로 여겨 모두 해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체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존귀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향한 자비는 더더욱 극진해야 합니다. 나누고 보태려는 그 정성 그 마음이 곧 지극한 자비입니다. 조계종복지재단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는 부처님 말씀을 이 땅에 실현시켜가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드리자 ‘보왕삼매론’의 일구를 전했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於人不求順適).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교만해지기 쉽다(人順勢則心必自矜).” 

청소년 시절 결단한 ‘출가’에 후회는 없는지 여쭈니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행자 때 해인사에서 처음 들었던 새벽예불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예불문 끝자락에 수행자들의 원력이 배어있다. 

“온누리의 모든 중생들이(願共法界諸衆生) 다함께 일시에 성불하길 기원합니다(自他一時成佛道).”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보인 스님은
양평군 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역임.
양평 용문사 주지 역임.
조계종 제14·17대 중앙종회 의원.
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상임대표.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서울시 법인연합회 부회장.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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