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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寫經匠)

0.1mm 가는 붓 끝에 자신의 삶을 태워 법신사리를 만들다

40년 넘는  세월 사경 매진…700년 전 고려사경 완벽하게 재현
정부, 사경장 무형문화재 신규등록…1호 사경장 보유자로 지정
경제적 어려움 가장 큰 난관…사경을 세계적 예술로 승화 목표

다길(多吉) 김경호 사경장.
다길(多吉) 김경호 사경장.

한 사람의 삶이 역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다길(多吉) 김경호 사경장의 삶이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신규 지정하고 그를 사경장 보유자 1호로 지정했다. 김 사경장은 고려 이후 억불의 조선을 거치며 700년 가까이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사경의 전통을 이 시대에 되살린 인물이다. 김 사경장은 40년 넘는 세월을 오로지 고려사경의 전통복원을 위해 바쳤다. 외길이었으며 신산(辛酸)의 여정이었다. 선대의 유산들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 재료 하나까지 혼자 힘으로 복원했다. 금과 은을 재료로 쓰는 사경은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작품을 시작하면 완성 때까지 경제활동을 모두 접은 채 몇 달을 제작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가난은 마장(魔障)처럼 김 사경장을 따라다녔다. 너무나 힘에 겨울 때면  김 사경장은 사경을 그만두자고 허망한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부처님의 가피가 내렸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사경에 대한 새로운 경계들이 열리고 지혜와 안목이 심연처럼 깊어졌다. 전율 같은 환희심과 성취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김 사경장이 한국사경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조계종이 개최한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한국사경연구회를 설립하고 전통사경을 복원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한국의 사경’ 같은 책들도 펴내 사경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중들의 이해를 돕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열며 한국 전통문화로서의 사경의 우수성을 알렸다. 해외에서 사경을 한국 고유한 전통문화로 인식하게 된 것은 오로지 김 사경장의 헌신 덕분이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문화재청은 사경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김 사경장은 지난해 화엄사에 700년 만에 문을 연 전통사경원 원장에 위촉됐다. 가장 오래된 사경인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이 화엄사를 개창한 연기 조사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절인연이 도래한 셈이다. 김 사경장은 화엄사 전통사경원에서 매년 수백 명의 교육생을 길러내 고려시대 못지않은 사경의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사경이란 무엇인가.
경전에 담긴 부처님 말씀을 옮겨 쓰는 것을 통칭해 사경이라고 한다. 사경은 지극한 정성과 신심의 결정체다. 전법의 수단이며 구도의 과정이고 법신사리를 모시는 불사이기도하다. 사경의 구성은 크게 필사와 경전 내용을 상징하는 변상도(變相圖), 표지장엄 등으로 구성된다. 0.1mm 붓 끝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 재료 세 가지가 청정한 가운데 이뤄지는 종합예술이면서 수행이기도 하다.

▲ 사경에 입문한 특별한 인연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어려서부터 서예와 그림을 그렸다. 불교집안이다 보니 경전의 글귀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고등학교 때는 불교에 심취해 출가도 했다. 세 번이나 부모님이 찾지 않았다면 아마도 선승의 길을 갔으리라 생각된다. 한 가지 사경의 바탕이 됐던 것은 있다. 어릴 때부터 서예를 하기 전 방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먹을 갈았다. 본격적으로 사경을 시작하고 보니, 옛 선인들이 사경을 할 때의 과정과 닮아있었다. 아마도 숙연(宿緣)이었을 것이다.

▲ 금과 은으로 먼지보다 작고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을 어떻게 그리는지, 돋보기 없이 그 선들이 보이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집중하면 보인다. 야구나 골프 선수들이 몰입해 운동을 하면 공이 축구공 만하게 보인다는 말을 한다. 같은 이치다. 집중하면 그런 경지가 열린다. 책상 위의 먼지를 0.1mm 붓으로 정확하게 콕 찍어서 3~5분 정도 흔들림 없이 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 1mm 네모 안에 가는 선 5~6개를 같은 간격으로 흔들림 없이 그려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밀한 부분을 그릴 때는 두문불출한다. 사경은 40도가 넘는 온도에 습도가 90%이상, 즉 사람이 매우 불쾌하게 느끼는 기온일 때가 가장 좋다. 그래야 아교가 굳지 않고 금이 잘 딸려 내려온다. 작품을 할 때는 하루 8시간씩 집중해서 하는데, 무문관에 들어 수행한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감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치아가 빠진 경우도 더러 있다.

▲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는 스님들의 경우 20대에 견성하시는 분이 가장 많았다. 사경도 수행과 같아서 집중력이 가장 좋을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 나도 최상승의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도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특히 1996년 제작한 ‘백지묵서금강경’은 가로 15m, 세로 3m 규모로 매일 8시간씩 8개월을 작업했던 작품이다. 지금은 눈도 잘 안보이고 체력도 안돼 이런 작품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새롭게 얻는 것이 있다. 안목이다. 혜안이나 지혜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 다른 종교나 나라에도 이런 사경의 전통이 있나.
2000년도부터 티베트 만다라에 관심을 가졌고, 2003년 이후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과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작품전을 하면서 코란과 기독교 경전의 장식사본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장식성에 있어 놀랍도록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사실 고려사경 가운데 좋은 작품의 대부분은 일본이 소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작품들의 변상도는 섬세함과 완성도 등에서 코란이나 기독교경전들의 사본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사경에 비해 우리의 고려사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사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해외에 알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사경의 길을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사경을 복원하고 작업하는 것은 노력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지만, 반려자에게 온전하게 집안 살림을 맡기는 것은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크다. 회고전을 2016년에 했다. 그때 나이가 54세였다. 그 나이에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전시회는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시회가 성공하지 못하면 전업해서 꽃집 아르바이트라도 할 생각이었다. 전시회 준비에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데 손해가 나면 그때는 파국이었다. 그런데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었다.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작품에 대한 호응도도 좋았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있다.

▲ 고려 사경과 비교해 지금의 사경 수준은 어떠한가.
지금 제자들의 작품 수준은 고려사경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고려사경의 경우 어떤 작품은 국보라 하더라도 확대해서보면 광배가 한쪽으로 쏠려있다든지, 선이 명확하지 않다든지 채색이 생략되거나 간소화해 버린 경우들이 보인다. 그런 작품들은 다시 리메이크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공간에 그려진 부처님이라도 의습(衣褶) 하나, 보관(寶冠) 하나 완벽하게 구체화했다. 확대해도 완벽하게 색과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 당대 최고 수준이라는 고려사경에 왜 이런 작품들이 있었을까.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짐작컨대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수요가 밀려들고 제작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에 반해 우리는 재료와 시간의 구애가 없다. 따라서 오로지 최상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아마도 그 차이일 것이다.

▲ 요즘 불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신행 중 하나가 펜으로 하는 사경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펜 사경도 신행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경과는 차이가 있다. 펜은 공책을 펴고 글씨를 따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사경은 법신사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사경은 밑그림이나 밑글씨가 없다. 연필보다 몇 배는 가늘게 쓰고 그려야하는 이런 작업을 할 정도로 가는 연필이 없다. 그래서 한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맑게 정화된 상태로 붓을 잡아, 가장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법신사리로 부끄럽지 않은 사경이 나올 수 있다.

▲ 사경의 수행적인 측면이 궁금하다.
사경에도 단계가 있다. 마음에 기별이 오는 단계, 마음의 평온을 이루는 단계, 막힌 부분이 수승하게 뚫리는 단계, 어떤 문제든 막힘없이 해결책이 보이는 단계, 맑아지고 맑아져서 주변이 환해지는 단계 등 많은 단계들이 있다. 간략하게 눈이 환해지는 단계, 몸이 환해지는 단계, 주변이 맑고 청정해지는 단계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사경의 역사와 전통, 예술적인 측면들을 정리했지만 이제 수행적인 측면을 조금씩 정리해 드러낼 생각이다. ‘화엄경’의 수행 단계에 비추어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행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경을 수행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 남은 과제나 목표가 있는가.
중국과 미국에서 한국사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불사에 동참해 달라든지 강의를 부탁한 곳들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당장은 힘들지만 한국의 전통사경을 세계에 알리는 차원에서 힘이 닿는 데로 수용할 생각이다. 할 수 있다면 기독교 경전이나 코란 장식사본과 우리의 사경을 비교하는 전시회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경장이 된 이후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진 부분이 있다. 고려사경을 세계적인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이다.

김형규 법보신문사 대표 kimh@beopbo.com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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