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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정(지담, 67) - 상

기자명 법보

시아버지 장례에서 불교 만나
다라니 수행에 업장 소멸 느껴
남편도 동참, 부처님 가피 입어

지담, 67
지담, 67

내가 불교를 만난 것은 돌아가신 시아버님 시신을 둘러 친 병풍 앞이었다. 2대 독자의 외며느리로 그것도 막내며느리가 된 나는 6개월 정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 것 외에 크게 정을 느낄만한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나’ 생각하던 중 누군가의 지장보살을 부르면 좋은 곳으로 간다던데라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나는 지장보살을 고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먼데서 매 재를 어떻게 오냐며 ‘금강경’을 한편씩 독송하라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을 앉혀놓고 재 때 마다 ‘금강경’ 한편을 읽었다. 막재를 지내고 온 날, 꿈에 시아버님이 새파란 초원을 나는 듯 오셔서 성큼 댓돌 위로 올라섰다. 이것이 내가 처음 만난 불교다. 

하루는 집 앞에 나왔는데 절로 가는 버스가 운행되는 것을 보고 무작정 탔다. 통도사 서울포교당이었다. 불사를 마치고 큰 법당으로 옮겨지는 중이라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기본 교리를 공부하며 참회와 공양간 봉사 등을 하기 시작했다. 100분의 스님을 모시고 백고좌법회를 삼년이나 동참하니 우리나라의 모든 큰스님들은 다 뵌 것 같다. 날마다 듣는 법문이 사실 와닿지 않았지만 무슨 인연인지 부처님 당시 있을 법한 장엄한 모습들을 다 보며 10년을 행자생활하듯 보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의 불심은 깊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가 고3이 되면서 홀로 기도처를 찾아나섰다. 다라니 108독을 하는 도량에서 천일기도에 동참하고 회향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기도처에서 만난 노스님이 “다라니 백만독을 하면 천상에 나리라” 하신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다라니 주력에 매진했다. 덕분인지 아이들 둘이 한번에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다른 희유한 일들도 일어났다. 기도의 가피는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스님이 아프리카로 3년정도 나가게 됐다. 그때 탄자니아 보리가람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 인연법은 부처님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나는 한 불자가 법공양한 ‘금강경’ 법문 테이프를 듣고 그 도량을 찾아갔다. 도량 시스템은 선방 그대로를 따르면서 다라니 주력을 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주력을 하는 이곳이 너무나 편안하고 마음에 들었다. 말도 하지 않고 차담도 하지 않고 면벽하듯 주력만 했다. 다행히 스님이 도량 봉사와 부처님 공양봉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어울리지 않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셨다. 집에서도 하루에 두시간씩 300독을 기본으로 했다. 이때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였다. 남편은 IMF로 외국환 업무가 쏟아지니 회사에 손실을 끼칠까 겁난다며 상사의 만류에도 사표를 냈다. 말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부장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남편이 사표를 낸 것을 알았다. 이후 남편은 백일기도를 한번 해보더니 스스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자격증시험을 준비해 자격증을 따서 안정된 일을 마침내 찾았다. 모두 부처님 가피다. 남편은 그 분야 대회 최고상을 받았다. 또 두 아이는 장성해 모두 예쁘게 성장한 재원을 데려와 결혼했다. 걱정이 없어졌다. 하루에 다라니 1000독씩 일주일을 더 정진했다. 기도도 계속했고 부처님께 향도 꾸준히 올렸다. 그리고 절도 끊임없이 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로 업장이 소멸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설명 없이 그저 다라니 수행을 해왔다. 광덕 스님의 ‘천수경’에서 ‘다라니의 상모는 대자비심이며 평등심이며 무위심이며 무염착심이며 공관심이며 무잡란심이며 무견치심이며 무상보리심’이라는 글을 의지삼아 정진해왔고 도량에서 6, 7안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다니던 사찰의 주지스님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후배 스님에게 절을 물려주시게 됐고 절은 송광사 분원이 됐다. 나는 그곳을 나와 혼자 서울에 있는 화계사, 봉은사, 조계사 등에서 한 철씩 기도회향을 했다. 그동안 집 문제와 관련해 걱정이었던 아이들이 작은 집이라도 얻어 전세를 걱정하지 않게 돼 기도를 회향하고 멈췄다. 그때부터 무료급식소, 복지원, BTN염불봉사, 종단사회복지재단, 장례식 염불봉사 등에 참여하며 3년을 보냈다. 그러다 암반선과 함께 수행의 스승님을 만났다.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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