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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오온과 무아 ①

업보는 있지만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

‘매번 새롭게 창발되는 나’는 곧 무아…오온이 서로 연기한 多我
오온이 순간 결합해 경험 되고 불교적 인과율로 새롭게 이어져
‘금강경’의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 필요

‘금강반야바라밀경’(868). 연·월·일이 명확히 기재된 가장 오래된 금강경 판본. 석가모니가 수보리에게 설법을 하고 있다.     대영박물관 소장
‘금강반야바라밀경’(868). 연·월·일이 명확히 기재된 가장 오래된 금강경 판본. 석가모니가 수보리에게 설법을 하고 있다.     대영박물관 소장

지난번 연재 글에서 불교교리는 존재와 사물에 대한 추상화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직접 고찰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울러 여기서 경험이란 뇌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바깥세계와의 교류의 산물이라는 점 또한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경험을 우리는 ‘지각’ 그리고 ‘인지’라고 부릅니다. 이 지각과 인지를 통해 우리는 바깥세계와 교류하면서 매번 새롭게 창발됩니다. 

매번 새롭게 ‘창발 되는 나’가 곧 무아에 대한 생활 세계적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 세계’란 일상적 삶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일상적 삶에서 무아란 ‘내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곧 다아(多我)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온(五蘊)설은 인간의 경험(혹은 존재)을 분석하는 불교 특유의 이론입니다. 오온설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자아’는 결국 다섯 가지 요소(法, dharma)의 구성물(construc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는 것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요소(法)들로서 이들 요소는 서로가 상관적, 연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 오온 이외에 어떤 다른 독립된 실재—우리가 흔히 ‘경험의 주체’ 혹은 자아라고 부르는 것—는 없으며 오온의 순간적인 결합에 의해 하나의 경험(혹은 존재)이 이루어지며 다음 순간 불교적 인과율(causality)에 따라 새로운 오온의 결합으로 이어집니다. 앞의 경험(혹은 존재)과 다음 순간의 경험(혹은 존재)간의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경험 주체의 동일성이 아니라 전후 경험 간의 인과율로서 불교에서는 이것을 상속(相續)이라고 부릅니다. 상속이란 ‘불연속적 연속’이라 이해해도 좋습니다. 이를테면 1/16초의 각 장면이 이어져서 화면에서 하나의 연속적 동작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어떤 주어진 경험의 순간에 그 배후나 근저에 신체적 정신적 현상을 초월하여 있는 자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습니다. 요컨대 현상적 경험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아(我)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경험만이 있을 뿐 경험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없다는 의미입니다. 경험만 있을 뿐 경험의 주체는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한문 및 팔리어 경전의 몇몇 구절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有業報而無作者(업보는 있지만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 ‘잡아함경’
범부들은 ‘내가 행위자[ahamkāra]’라고 하는 생각에 묶여있다…(그러나) 주의 깊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행위 한다는 생각은 없다. ‘Udāna’
행위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으며…경험은 있되 경험을 하는 자는 없다. ‘Visuddhimagga XIX 20’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경험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생활세계 영역에서 매번 새롭게 창발 되는 ‘나’라고 하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색·수·상·행·식 오온이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오온설은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자아를 해체하여 무아를 강조할 뿐 아니라 ‘인격’이 아닌 법(法, dhamma)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불교의 세계이해 특히 초기불교에서의 세계이해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해체하여 그 존재요소인 법(法)으로 환원하여 그 법의 인과적 법칙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법은 철저히 비인격적(impersonal)인 것으로, 이러한 ‘해체’를 통한 불교의 새로운 세계이해의 근저에는 무아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상적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존재요소(법)를 하나하나 살펴보기에 앞서 불교에서 부정하는 아(我)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우리가 흔히 갖게 되는 ‘나’라는 생각을 4가지 유형별로 나누어 이를 사상(四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상(四相)이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네 가지로서 ‘아(我)’에 관한 유아론(有我論)의 4가지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상(我相)입니다. 여기에서의 ‘아’는 브라마니즘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본질로서의 아트만(ātman)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현상적 경험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를 의미합니다. 서양 형이상학적 전통에서 강조하는 자아도 일종의 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잘못된 관념은 인상(人相)입니다. 여기에 대해 여러 근거 없는 한글 번역과 해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인상(人相)’의 정확한 의미는 개체적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기 동일성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기도 합니다. 흔히 윤회의 주체로 여기는 ‘나’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생(과거)의 나와 현생(현재)의 나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교적 관점의 윤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환생’(還生 reincarnation)입니다. 동일한 ‘나’가 거듭 태어난다든가, 과거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한 개체의 연속이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상(人相)입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개체가 연속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잘못된 관념은 중생상(衆生相)입니다. 흔히 중생상을 가리켜 “내가 부처가 아니라 중생”이라는 생각이라거나 혹은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중생을 분별하는 착각”이라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이해입니다.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이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상술하겠습니다.

네 번째 수자상의 ‘수자’(壽者)는 산스크리트 ‘jīva’의 역어로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종의 ‘기(氣)’ 혹은 ‘영(靈)’과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영육(靈肉)을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가운데 ‘영혼’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영혼’ ‘기(氣)’ 같은 관념 등을 근거로 유아론를 주장하는 경우를 일컫는 것입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582호 / 2021년 4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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