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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량사 주지 현엽 스님

“업생을 멈추고 원생으로 사는 게 기도이고 수행입니다”

과거 습관·집착에 얽매여 사는 건 ‘업생’에 끌려다니는 삶
부처님 연기법을 알게 된다면 집착에서 벗어나 행복 찾아
부처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을 마음껏 누린다는 의미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업생(業生)’과 ‘원생(願生)’입니다. 다른 말로는 업력(業力)과 원력(願力)이라고도 합니다. 업에 이끌려 가는 삶을 “업생을 산다”고 합니다. 반대로 과거에 혹은 전생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불교와 인연을 맺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업생을 멈추게 된다면 곧바로 원생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업력에 이끌려 가는 삶을 멈춰야 합니다. 업력은 습기, 버릇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행동들이 익힌 버릇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를 한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에서 괴로움을 느꼈고, 어떤 일에서 슬픔을 느꼈고, 어떤 일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어떤 일에서 행복함을 느꼈습니까? 그 모든 괴로움도 즐거움도 슬픔도 부처님의 입장으로 보면 모두 찰나입니다. 그냥 스치는 인연일 뿐인데 괴로움, 슬픔, 즐거움에 집착을 합니다. 이것이 곧 업력의 삶입니다.

업력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이라는 말을 먼저 새겨보아야 합니다.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 연각승만 공부해봅시다. 

연각은 연기법을 생각하는 수행입니다. 이 도량과 인연을 맺고 불교대학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졸업까지 열심히 다니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약속이나 어떤 일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결석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주위에 다른 일이 생기는 것이 바로 업력에 끌려가는 삶입니다. 마음을 다잡고 ‘불교대학에 나가서 행복을 찾겠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행복을 발견하겠다’라는 생각을 반복해서 스스로 다짐하다 보면 오기 싫은 날도,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날도 절에 오게 됩니다. 연기법을 항상 생각하면 연각승이 됩니다. 

우리는 절에 다니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도 언젠가는 좋은 일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삶에서 현실적으로 좋은 인연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관리하고 다듬고, 그것을 다시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이어가는 것이 곧 연각승입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어렵다.” 팔만대장경을 다 알려고 하니 당연히 어렵습니다. 모든 경전의 말씀을 다 알려는 욕심보다는 연기법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거기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전부 연결됩니다. 그러면 매 순간 부처님 닮아가는 공부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기도이고 수행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불교를 지식으로만 공부한다면 삶의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비유와 방편이 나옵니다. ‘법화경’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비유와 방편을 참 많이 사용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제자에게 연기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걸어가는데 제자들이 연기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한참 길을 걸어가다가 종이를 하나 들어 보이시며 “이 종이에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라고 묻습니다. 제자가 맡아 보고는 “향기가 납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또 한참 길을 걸어가다가 또 다른 종이를 들어 보이며 “이 종이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라고 물어보니 제자는 “그 종이는 비린내, 생선 냄새가 납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종이에는 생선 냄새도 없고 향기도 없다. 향과 인연이 되니까 향기가 나고 생선과 인연이 되니까 비린내가 날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아주 먼 지역에서 어떤 인연에 의해 이 도량을 찾아오신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런가 하면 도량의 바로 옆 건물에 사는 지역 주민이라 할지라도 절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불자님도 있습니다. 인생난득 불법난봉(人生難得 佛法難逢)이라 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도 사람 노릇 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겉만 사람이지 행동은 사람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사람 노릇 하기도 어렵지만, 부처님 법 만나기는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났지만, 정법 만나기가 어렵고 지도를 잘 해주는 스승 만나기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만큼 지중한 인연으로 여러분은 불교대학 입학식에 오셨습니다. 절은 이곳이 처음일 수도 있고 다른 절에 다니다가 오신 분도 계실 겁니다. 각자 이 도량과 인연을 지은 것이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인연을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과거를 내려놓고, 알음알이를 비우고, 부처님 공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진정으로 아름다운 불자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순간이 계기가 되어 여러분 삶에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부처님 공부를 통해서 좋아지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가 없으면 이름만 신도이고 이름만 불자입니다. 

무엇보다 불교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대승불교의 덕목인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입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은 육바라밀을 참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하셨습니다. ‘보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님에게는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리를 배웠노라.” 살다 보면 연인이나 정말 좋은 친구 또는 고마운 이웃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적이 있을 겁니다.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마음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지계’입니다. 춘원 선생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님께 보이고자 애써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우리절 신도님 한 분에게 스무 살 아들이 있는데 전에는 너무나도 게을렀다고 합니다. 잘 씻지도 않았었는데 여자 친구가 생긴 이후에는 하루에 거울을 열 번도 넘게 본다는 겁니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한참 씻고 머리카락을 빗는 데도 한참 걸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잘 보이고 싶은 것이 곧 지계입니다. 매주 한 차례 불교대학에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날은 주위의 친구들과 약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날만큼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지계입니다. 이처럼 계율을 잘 지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옷을 깨끗이 입는 것, 목욕하는 것, 음식을 가리는 것도 지계입니다. 중요한 또 한 가지, 절마다 많이 하는 기도법은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렇게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입니다. 또 다라니 기도를 하는 분도 있고 절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한 가지 수행법을 최소 1년은 지속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것도 지계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면 행복의 지수가 높아집니다. 기도하지 않고, 수행하지 않고, 명상하지 않고는 맛을 볼 수 없습니다. 

수능 때가 되면 수험생을 둔 불자님들은 시키지도 않는데 절을 합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합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면 발길이 끊어집니다. 수행은 급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쉬지도 말아야 합니다. 꾸준히 성불 때까지 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한 불자님은 불교대학 수업에 올 때 아예 핸드폰을 끈다고 합니다. 절에 오는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절하기 힘든 연락이 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불교대학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면 곧 해탈할 수 있고 성불할 수 있습니다. 불자들은 의외로 해탈하겠다는 원을 잘 세우지 않습니다. 성불하겠다는 원도 잘 세우지 않습니다. 극락에 가겠다는 원조차도 잘 세우지 않습니다. 원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 수요일만이라도 108배를 하겠다’는  원을 세우지 않으면 실천이 안 됩니다. 일주일 중에서 하루만은 오로지 부처님께 매달린다, 이렇게 원을 세우면 기도가 되고 공부도 하고 공덕도 쌓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참다운 신도가 됩니다. 이 마음으로 초심 때부터 다짐하고, 다짐하며 마음을 관리하고 관리하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불행할 때만 부처님을 찾고 괴로울 때만 부처님을 찾고 계십니까? 이것은 업생에 끌려가는 삶입니다. ‘왜 나에게 불행이 왔을까.’ 연기법으로 조금만 생각하면 풀어집니다. 괴로움도 슬픔도 즐거움도 기쁨도 연기법으로 잘 생각해보면 원인과 답이 나옵니다. 업생을 멈추고 그치게 하는 것이 기도이고 수행이고 명상입니다. 그래야만 밝은 미래로 가는, 행복으로 가는, 기쁨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불교의 꽃은 연꽃입니다. 연꽃을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고 합니다. 연꽃은 실제로 더러운 물에 삽니다. 깊숙한 곳을 내려다보면 냄새나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또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을 마음껏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 행복은 제3자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이미 행복하다는 진리를 발견하면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연꽃 같은 신도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나길 바라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4월11일 부산 여래선원(주지 효산 스님) 여여불교대학 제2기 입학식에서 부산 강서 청량사 주지이며 여래선원 회주 현엽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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