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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창경궁에서 만난 두 석탑

기자명 최명숙

탑은 간절함으로 쌓아올린 마음

조선의 궁궐 내에 있는 불교문화재
타의에 의해 훼손된 슬픈 역사담겨
자리가 옮겨져도 결국 부처님 향해

창경궁 오층석탑.
창경궁 오층석탑.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나무마다 꽃이 피었다. 잔 가지에 연두색 잎들이 자라 신록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거리에서도 제빛을 갖는 나뭇잎이 신선함, 평화로움, 생동감을 안겨준다. 시간과 사회 변화에 발이라도 맞추듯 타지에서 들어온 나무와 꽃들이 토착화돼 아름답게 어울려 피고 진다. 

변화는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도 있고 교류가 많아져 자연스레 그리된 것도 있다. 또 환경에 적응하는 근기에 따라 혹은 타자의 의지로 생존과 소멸의 줄을 서기도 한다. 우리는 생존하고 소멸하는 그것들에 대해 지키지 못해 없어진 것에 그리움을 더해 안타까워하고, 새로운 것에는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곤 한다. 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것엔 기특하다며 찬사를 보내곤 한다. 

우리는 생존과 소멸 속에서 환경과 모양이 변하고 쓰임새가 바뀌었더라도 그 본질, 근본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서울에 있다 해도 나의 고향은 그대로이고, 유럽의 성당 안에 있다고 해서 종교가 바뀌진 않으며 탑이 엉뚱하게 궁궐 한가운데 서 있을지라도 부처님을 예경하지 않는 탑은 아니다. 

서울의 창경궁에는 두 개의 탑이 있다. 팔각칠층석탑(보물)과 명정전 뒤 오층석탑이다. 유교를 중시했던 조선의 궁궐에  이 탑이 어떻게 서 있게 됐는지 그 까닭이 궁금해지나 오층석탑의 자리를 옮기기 위해 불교계에서 노력했었다는 뉴스 등이 있을 뿐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조선시대 궁궐 안에 어색하지 않게 서 있는 탑의 내력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해지는 일일 것이다.

춘당지(春塘池)의 비탈진 땅에 팔각칠층석탑(보물)이 있다. 탑의 1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려놓고 몸돌보다 기단부가 상대적으로 높고 많은 조각 장식을 하고 있는 라마탑 형태의 석탑이다. 조선 성종 원년인 1470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강점기인 1911년 창경궁 안에 이왕가박물관을 건립할 때 한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제 나라 제 위치에 있었으면 좀 더 제 역할을 하며 빛이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당지를 사이 두고 카메라 렌즈 속으로 들어오는 팔각칠층석탑은 주변 나무들과 어울려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남의 나라 이국에 와서 궁궐의 한 귀퉁이에 살며 보물까지 되었으나 햇살의 그늘이 드리워져 쓸쓸해 보였다. 라마사원에 있어야 할 탑이 고향을 떠나와 있어서일까. 이제는 창경궁의 정원 춘당지 일부가 되어 창경궁을 대표하는 탑이 되었으니 나름의 빛남이 있을 것이다.

창경궁의 또 하나의 탑은 창경궁 함인정 옆, 명정전 뒤에 서 있는 오층석탑이다. 석탑 1층 탑신에 새겨진 부처님 좌상은 왕과 왕비의 침소인 환경전을 바로 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어디선가 옮겨진 고려 시대 석탑이라는 이 오층석탑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조사에서 충청지역 사찰에서 건립된 사리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였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창경궁 전각들을 허물고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을 세웠고 이때 일제는 정원의 장식용으로 삼듯 전국 곳곳에서 고려 석탑을 궁궐로 가져왔고 그 고려 석탑 상당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불교 문화재와 궁궐이 이렇게 타의에 의해 훼손되었음은 참으로 슬픈 역사다. 동물원이었던 창경궁이 궁으로의 모습을 찾았고 1930년대부터 현재의 자리에 있었음도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있을 터이고 탑의 근원이 밝혀져 제자리를 찾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창경궁의 팔각칠층석탑이나 오층석탑이나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비록 처음의 자리에서 옮겨져 지금의 자리에 서 있지만, 현재의 자리나 애초의 자리에서 그 불법의 근본자리로 본다면 부처님께로 향하는 한 자리에 있는 것이며 모두가 한 모습일 것이다.

어느 시인은 “탑은 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쌓아 올린 마음”이라고 말을 했었다. 탑이 있는 고궁의 풍경 속에서 탑을 마주하고 섰는 나의 마음도 탑의 지나간 날의 연유와 역사는 뒤로하고 시인의 말에 공감을 한다.

신록이 빠르게 짙어질 고궁에서 두 탑은 침묵으로 서 있지만 코로나19의 현실이 어렵기만 한 나라와 국민이 두루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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