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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지식인 감별법

어떠한 지적 작업이라도 논리 토대로 진행돼야

대중매체와 SNS 발달로 여과되지 않은 정보·주장 흘러 넘쳐
말재주 있는 정치 논객부터 스스로 철학자라 부르는 이들까지
정교함도 깊이도 체계도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가짜 지식인들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대중 매체와 소셜네트워크(SNS)의 발달로 정보가 흘러 넘쳐 여과되지 않은 주장들이 한없이 돌아다닌다. 이런 폐해를 막으려면 그 근원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근원의 몸체는 폐해를 생산하는 가짜 지식인들이다. 이번 기회에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경험한 한국사회의 사이비 지식인의 예를 몇 제시해 보겠다.

<정치 지식인>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두 논객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서울대 출신이지만 독일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못 받고 석사만 들고 돌아왔다. 한 사람이 쓴 책을 보면 유학 6년 후 석사를 받았는데 박사를 받으려면 5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귀국했단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다른 사람은 6년을 전후해 박사학위를 마치는데, 이 사람은 논문의 질이 떨어져 그냥 석사학위만 준 것일 거다. 말재주 있는 정치논객이라고 깊이를 뚫는 학자적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박사(Doktor) 학위 소지자는 실은 조교 자격증밖에 없다. 교수가 되려면 그 위의 단계인 Habilitation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두 지식인(?)은 조교 자격증도 못 받고 돌아온 셈이다. 아카데미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들이 그동안 한국의 대중들로부터는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것이 좋아 그토록 말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서울법대 교수들 사이에서는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교수는 동급의 교수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혹 정치적 수완으로 교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실력이 없으면 사법고시는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인정이 많이 필요한가 보다.

<자칭 철학자라는 사람>
대학에서 정식으로 철학교육을 받지도 않고, 철학으로 석·박사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철학적 저술을 완성한 것도 아닌데 자칭 철학자라며 책 팔고 강연 팔아 돈 버는 사람들이 있다. 나름대로 의견(opinion)이 있다는 것을 자기 철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이미 고대로부터, 검토 되고 비판받지 않은 의견을 피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기타 친다고 아무나 뮤지션은 아니다. 

이들의 엉터리 철학책에는 보통 글보다 그림이 더 많고 여백도 터무니없이 넓다. 또 책이 너무 예쁘다. 내용이 빈약하니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들어 판다. 이런 엉터리철학자는 강연할 때 내용보다 헤어스타일, 옷, 얼굴표정, 피부 관리에 더 투자한다. 관심 끌려고 자꾸 신조어도 만드는데, 새 생각은 없으면서 마치 새로운 생각이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감성팔이와 얄팍한 지식>
정(情) 많은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보니 감성에 호소해 목적을 이루려는 가짜들이 득실거린다. 이들은 감성자극에는 능한데 우리의 이성(理性)에 어필하는 일은 못하거나 안 한다. 말을 꼬는 재주는 있는데 올바른 논의를 위해 따라야 할 토론의 법칙은 수시로 위반한다.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주장하지만 그것을 받쳐주는 이론적 배경이 빈약하다.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감성을 이용해 한쪽으로만 몰고 간다. 아무리 보아도 참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잠시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아무 일에도 깊은 이해가 없다. 이야기는 재밌는데 돌아서면 남는 것이 없다. 그들의 책은 즐겁게 읽히는데 책을 덮으면 다시 생각할 것이 없다. 한 번 들으면 다 이해할 수 있게 말하고 쓴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결국 한 번도 더 생각할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정교함도 깊이도 체계도 없기 때문에 한 꺼풀만 벗기면 모두 ‘아몰랑’이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한다.

<동양학>
한국에서 박사학위와 학술지 발표논문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스님이 최근 유튜브(YouTube) 강의에서 ‘왜 불교학 학위를 서양에서 받지? 원효를 왜 서양에 가서 배우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스님과 의견이 같다. 서양 명문대학에서 그들에게 생소한 주제로 쉽게 학위를 마치면 신나겠지만, 동양학 학위를 서양에서 받는 일이 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영어권 동양철학 유명 학술지에 나오는 논문의 내용이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을 영어로 소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많이 실망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나온 책과 논문 읽기를 좋아한다. 내용이 더 풍부하고 역사와 문화에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어 읽기도 쉽다. 아직도 연구방법론이나 개념분석 기술은 서양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교수와 학생이 서로 노력하면 서양으로 유학가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이룰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한편 동양인이거나 출가자여서 서양에서 쉽게 불교학 대학원에 진학하고 또 졸업 후 그곳에서 교수되기도 쉬웠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런 배경을 자산으로 한국에서 쉽게 인기 얻고 돈 벌고 교수도 되는데, 그들이 진정한 실력으로 그러는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서양 대부분 대학에서는 유학이나 불교학을 철학이 아니라 동양학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많은 한국대학에서는 이 과목들이 철학과 소속이다. 그래서 가끔은 철학적 훈련이 없는 동양학 전공자가 동양 문헌을 해석하고 내용을 정리하며 철학 교수직을 유지하기도 한다. 나는 철학의 가장 기본인 논리학도 모르면서 철학교수를 하기도 하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렵다.

동양학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또 존경받고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지적(知的) 작업도 최소한 논리학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어야 철학이다. 철학교수라면 누구나 논리학을 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동양학이 이에 반대한다면 철학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면 된다. 기본적 전제가 다른 두 학문이 불편한 동거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함께 한 적도 없다.

홍창성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철학교수 cshongmnstate@hotmail.com

[1583호 / 2021년 4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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