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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감정

기자명 진원 스님

세 모녀 사건을 잊을 시간도 없이 연일 가정 안팎에서 폭력 피해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연인들이 이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스토킹 범죄는 이미 일상화가 됐다.

얼마 전 국회는 22년만에 스토킹에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하는 범죄로 규정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법적근거가 생기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있는 “누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인 짝사랑도 범죄인가?” 그래서 늘 쓰고 들어왔던 “10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어디 있느냐” 등 안이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빙자한 집착으로 상대방이나 가족에게 접근하고 괴롭히는 행위 등이 용인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1번을 찍든 100번을 찍든 상대 의사에 반한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특히 흉기를 이용한 스토킹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신고 건수가 1년에 약 5000건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암수범죄율은 훨씬 높을 것이다.

여성폭력 현장에서 늘 답답했던 문제 중에 하나가 스토킹에 노출된 여성의 피해 호소였다. 전에 사귀던 남자가 지속적으로 따라 다니거나, 다른 남성과 교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집 앞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정도는 약과라고나 해야 할까. 밤낮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수백 통 보내고, 사적인 대화내용을 공개하기도 하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협박하기도 한다. 이러한 피해를 당하는 여성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를 호소하고 심지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지만 실제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처벌법이 없다는 이유로 이사를 권유하는 정도 또는 훈방조치나 경범죄 정도의 처벌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스토킹이 남녀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을 했다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이유로, 또는 마땅한 이유도 없이 끝까지 괴롭힌다. 설사 신고가 받아들여지더라도 그래서 굳이 처벌한다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가 전부였다. 그동안 스토킹은 길가에 휴지 버리는 정도의 행위, 소리 지르는 행위 등과 동일선상에 있는 경범죄, 말 그대로 새털처럼 가벼운 실수 정도로 간주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이 더 수위가 높아지며 끝내 목숨까지 앗아가는 일들이 왜 반복이 될까? 상담을 해 보면, 기저에는 생명경시가 있고, 한결같이 분을 삯이거나 다스리지 못하는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편집증적인 집착은 배신이라는 감정으로 전이시켜 상대방에 대한 해코지로 나타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의 감정을 읽어주는 공감능력을 훈련해본 적이 없다. 또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객관화시키는 것에 감수성이 크게 떨어진다.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공감과 이해라는 감수성이 의무처럼 필요한 시대가 됐다.

분노가 자꾸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감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공감과 이해가 아닌 집착이라는 것을. 집착은 결국 소유의 개념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완전한 독립체이다. 나는 물론 상대 또한 독립체임을 인정하고 남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공감능력이 커질 때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명상이나 절과 같은 마음수련으로 상대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鍊習)의 수행이 필요하다. 습(習)은 갓 부화한 새가 날개 짓하기 위해 백번이고 천번이고 연습해 날아오르는 글자를 형상화했다.

공감은 나와 상대방이 둘이 아니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하듯 상대 입장에서 서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대는 물론 내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며,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길이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585호 / 2021년 5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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