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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향연

오월이면 무엇보다 초파일의 연등 축제를 생각하게 된다.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장엄한 등의 축제는 봄의 꽃잔치와 어우러져 생명의 약동을 축복한다. 온갖 생명이 저마다의 향기를 뽐내며 법계를 장엄하지 않는가? 모든 생명은 행복하라, 모든 생명은 자유로워라. 어떤 것이든 생명 그 자체는 경이롭고 존엄하지 않은가? 연등을 꾸미는 오방색이란 온 우주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오방색에 나의 주체적 색깔을 더하면 시방세계를 상징하는 색깔이 된다.

하지만 금년의 초파일 연등 행사도 간단하게 치러야 한다고 한다. 오방색으로 서울의 밤하늘을 축복하는 일도 내년을 기약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의 정성을 담아 ‘서로 행복하자고, 서로 사랑하자고’ 마음의 꽃을 피우는 향연이 미루어진 것이다. 이제 서울 시내의 밤거리를 수놓던 일도 먼 옛날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시책에 협조하려는 종단의 의지이기도 하다. 까짓것 금년에 못하면 내년이 있다. 그렇다고 연등을 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전국의 각 사찰에선 불자들의 염원을 담은 연등을 달 것이다.

필자의 뇌리에서 초파일하면 무엇보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버이날이 함께 하는 오월이지만 그분들을 뵐 수는 없다. 평생 고단한 시골에서 사셨지만, 부처님께 기도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지금은 산새와 시냇물, 그리고 산골짜기에 부는 바람 소리를 벗 삼아 영겁의 명상에 들어가 계신다. 마치 가섭존자가 금란가사를 전하기 위해 계족산에 들어가 명상에 잠겨있듯이. 이제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집안의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다는 어머님의 말씀 때문인지, 다른 종교에 다녀보지 못했다. 다만 불교의 가르침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 의문을 해결해 주신 분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이셨던 죽리 김홍철 박사님이다. 지방의 사립대학을 정년하신지 오래 되셨다. 말년은 서예 삼매를 즐기시고 계실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알고 싶다는 필자의 간청에 따라 청주 와우산 수도원을 소개해 주셔서 그곳의 불교학생회를 다니게 되었다.

초파일이면 연등 축제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등을 만들었던 추억이나 초파일 저녁 친구들과 함께 연등의 휘황한 불빛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운 친구들이지만 이제는 초로에 접어들어 각자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더러는 이미 먼 길을 떠난 친구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불심을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색깔로 세상을 장엄하는 등불이 되려는 노력이라 생각된다. 언제까지나 그들이 행복하길 기원한다.

초파일 추억은 연등 색깔처럼 교집합이다. 그것은 단색일 때보다도 어우러져야 더욱 아름답다. 다양한 색깔로 아롱진 우리들의 인생처럼, 그렇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듯이, 오방색의 연등도 무수한 인연의 교집합으로 빛나는 것이리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다양한 염원이 오색의 연등으로 현현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중생의 염원이란 결국 자신의 색상을 통해 세상을 수놓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초파일은 생명의 환희요, 축복의 마당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금년 초파일의 추억을 새롭게 만들어 주리라. 관음보살이 33신으로 화현하여 중생의 염원을 충족시켜 주듯이, 초파일의 연등은 오방색으로 빛나며 생명의 행복을 축복하리라. 바로 우리 모두의 염원이 연등보살로 환생해 상생과 화합의 힘찬 합창의 울림을 만드리라. 초파일은 오늘이 있기까지 공덕을 베풀어준 인연들에 감사의 합장을 하는 날이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많은 스님과 도반들, 그리고 무수한 인연들. 초파일의 오방색 연등은, 그들을 위해 부르는 축복의 기도문이 되리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길. 내 작은 염원이 행복을 부르는 주문이 되길.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svhaha@hanmail.net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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