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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기자명 민순의

지난 몇 주 우리 사회는 한강에서 사망한 한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애도와 함께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보도되었으나 이내 포털 대문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또 한 명의 젊은 죽음은 크게 기억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이의 빈소에 대통령이 몸소 방문해 조문을 했음에도 이 또한 단발의 기사로만 보도되었던 그 죽음은.

기사에 공개되었으니 여기에서도 그이의 이름과 신상을 밝히겠다. 이선호씨. 1998년생 올해 나이 23살. 대학 3학년. 등록금 마련을 위해 평택항 부두 야적장에서 아르바이트 작업 중 2021년 4월22일 오후 4시10분 무렵 용역회사의 지시에 따라 컨테이너 바닥 이물질 청소 과정에서 300kg 가량의 컨테이너에 깔려 병원으로 이송 후 사망.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일 배당된 컨테이너 작업은 평소 그이의 업무도 아니었고 회사 측의 사전 안전교육도 전무했다고 한다. 안전모 하나 없이 작업에 투입되었으며, 현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관리자 등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은 사고 다음 날 지역신문 두 곳과 YTN을 통해 단신으로 보도되었고, 이후 일주일 간 3건의 후속 보도가 더 이어지다가, 5월 들어 원인 규명에 대한 유가족의 절규 어린 호소와 일부 시민사회에서의 주목이 있자, 대통령의 조문 및 일부 정치인의 관련 발언과 함께 정부·지자체 합동TF팀이 꾸려지며, 마침내 사고 후 20일 만에 원청기업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장례식장에서 대통령이 했다는 “약속 못 지켜 송구하다”는 말이 가슴을 후빈다. 지난해 말 그토록 애타게 바랬으나 끝내 누더기가 되어 통과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암연하다. 올해 1월8일 통과된 법률의 내용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부상자나 질병자가 발생한 중대재해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렇지만 이 법률은 공포 1년 후 시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시행 시점이 법률 공포 3년 후로 완화된다.

모든 법률은 개정 후 공시를 위한 유예 기간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온 국민이 다 아는 이 법의 내용을, 심지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라면 더 각별히 예의주시했을 이 법의 내용을 공시하는 데에 1년이나 되는 시간이 필요했을까. 작년 그 숱한 노동자들의 아까운 목숨을 잃고 마련된 법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한 사람의 목숨 값을 매긴 기준도 기가 막히려니와, 유예 기간이 연장된 소규모 사업장의 규모를 50인 미만으로 설정하며 그 유예 기간을 3년까지 연장한 것도 괴이쩍기 짝이 없다. 

꽃다운 나이에 아들을 잃은 그 부모님의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은 차마 상상조차 못 하겠다. 조금 더 검색해 보니 이달 초 이선호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호소하며 청와대 청원에 7만명이 넘는 이들이 서명했다고 한다. 타인의 행복을 바랄 뿐 아니라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보살의 자비심이라고 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7만명이 넘는 보살들이 있었구나.

이 봄, 선한 의지의 불충분함과 취약한 제도의 허점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젊은이의 죽음을 맞았다. 그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래서 그 죽음의 책임에 대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되지 않도록, 7만명이 넘는 보살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기억하겠다. 아름다운 봄날 우리 곁을 떠난 젊은이가 그곳에서라도 외롭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nirvana1010@hanmail.net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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