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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순례’, 이 시대 갈등해법 찾는 길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6.07 09:25
  • 호수 1588
  • 댓글 0

일반인 대상으로 장경판전 개방
해인사의 이례적이고 대담한 용단
코로나19·경제난 점철된 사회에
상생 의지로 풀어가자는 제안

법보종찰 해인사가 장경판전의 문을 활짝 열고 고려대장경판(국보)을 전격 공개한다. 주요 대상은 일반인이다. 정대불사를 비롯한 친견법회가 거행된 적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고려대장경판이 봉안된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문이 열리는 건 특별법회가 아니고는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불교계에 종사하고 있는 불자라도 장경판전에 들어서는 기회를 갖는 건 ‘백천만겁난조우’라 할 만큼 지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문화해설사가 동행해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인경체험의 기회도 주어질 것이라고 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해인사의 이번 장경판전 전면 개방 결단은 코로나19 여파를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해인사 총무 진각 스님이 기자회견을 통해 전한 고려대장경판을 전 국민 앞에 내보인 이유는 이렇다.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팔만대장경의 문화재적 가치를 국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숱한 내부논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팔만대장경 친견을 계기로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어려움이 극복되고,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대중들의 마음이 모아지길 희망합니다.” 해인사 사부대중의 고뇌와 바람이 응축돼 있다.

전 세계에는 20여종의 대장경이 있었다. ‘북송칙판대장경판(北宋勅板大藏經板)’과 ‘거란본대장경(契丹本大藏經板)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대장경판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모든 대장경의 완결판’이다. 앞서 언급한 중국의 대장경과 고려 현종 때 조성된 ‘초조 고려대장경판’ 등을 엄밀하게 대조·교정해 가며 조성했기 때문이다.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중에서도 정확한 판본으로 정평 나 있다.
‘북송칙판대장경’과 ‘거란본대장경’은 소실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고려대장경판은 판수만도 8만 매가 넘는다. 사계절이 분명한 환경에서 목판을 800년 가까이 완벽에 가깝게 보존해 온 자체가 희유한 일인데 지금도 선명하게 인쇄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불자와 학자들에게 원전(原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예술성은 경이롭다. 수많은 조각사들이 이 불사에 참여했을 게 분명한데 마치 한 사람이 각을 한 듯 필체가 한결같다. 추사 김정희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요, 선인들이 쓴 것 같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 문화의 정수가 배인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불자들만 품고 있어야 할까? 분명 아니다. 그런 의도를 조계종 총무원과 해인사가 가진 적도 없다. 그러나 공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애써 누른 채 ‘보존’에만 방점을 찍는다면 본의는 아니지만 ‘불교의 전유물’로 인식될 수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때 잃는 게 너무 크다. 해인사 고려대장경에 농축된 사상과 정신이 너무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이규보가 쓴 ‘대장각판군신기고문’의 한 대목을 보자, ‘…지성으로 발원하는 바가 전조(前朝)에 부끄러워 할 것이 없사온즉, 엎드려 비옵나니, 제불성현(諸佛聖賢)과 삼십삼천(三十三天)께서는 저희들의 간절한 기원을 들으셔서, 신통한 힘을 빌려주어, 완악한 오랑캐로 하여금 멀러 달아나게 하여, 다시는 이 강토를 짓밟지 못하게 하시고, 나라 안팎이 편안하고, 모후와 저군(儲君)이 만수무강하고, 국운이 영원무궁케 하소서! …’

이기영 교수와 안계현 교수가 설파했듯 “불법을 숭상하는 맑고 바른 마음에서 정성을 다하여 국가와 민족의 수호하고자 함”이며 “불력(佛力)으로 침략군을 격퇴하려는 고려인의 절실한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한 나라에 닥친 위기를 한 마음으로 극복해 가려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다. 고종이 주도했고, 대장도감이 주관한 것이지만 이 사업의 주체는 고려의 모든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해인사가 일반인을 상대로 장경판전을 개방해 ‘팔만대장경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한 연유도 여기에 있을 법하다. 불교문화재의 우수성을 넘어선, 작금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주는 것으로 읽힌다. 코로나19, 빈부갈등, 경제난 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해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권유이기도 할 것이다.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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