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이 좋은 일만 했다고?

기자명 이병두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지난 4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대통령이 이룩한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신부와 수녀를 관저에 초청해 기도를 하고 현직 가톨릭 주교를 로마 교왕청에 특사로 파견하는가 하면, 로마방문 시 미사 참석 장면을 생중계하고 교왕과의 만남을 알현(謁見)이라고 발표하는 등 개인 종교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대통령이 국민화합을 깨뜨린다’는 비판을 받게 하였다. 결국 올해 5월22일 꽉 짜인 방미 일정에서 틈을 내 가톨릭교회 워싱턴 교구장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가톨릭 편향적인’ 말을 해서 이승만-김영삼-이명박에 이어 ‘종교 편향 대통령’의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국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설사 99퍼센트를 잘 할지라도 나머지 1퍼센트를 잘못하면, 그리고 그것이 갈등을 유발하여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라면 그 하나(1) 때문에 나머지 아흔아홉(99)의 빛이 바래고 훗날 역사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발언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졌으므로 다시 거론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하기로 한다. 맨 먼저 ‘가톨릭 신자 비율이 12~13%’라는 언급에서부터 대통령의 말이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1984년부터 2021년에 이르기까지 인구통계조사에서 가톨릭 신자는 6%와 7% 사이를 오르내렸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한 사실이라고 믿는 확증편향’에 가깝다.

가톨릭이 인권·민주화 운동과 통일을 위한 사업 등에서 크게 기여했다는 언급도 일부만 맞다. 가톨릭의 지원으로 거물 정치인이 된 장면이 이승만과 결별한 이후, 그리고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일시 인권과 민주화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가톨릭이 저지른 반민족적이고 독재 정권을 지지해주던 기간에 비하면 그 비율이 아주 낮다.

반공투쟁을 “타협할 수 없고 공생할 수 없는 마(魔)와의 최후 투쟁”으로 여기던 전 세계 교회의 분위기에 따라 1947년에 38도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하였고, 다른 종교계와 달리 남북협상에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토지개혁에 대하여도 매우 부정적이었던 곳이 한국 가톨릭교회다. 이 모두가 당시 상황을 “유물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투쟁기”로 판단하면서 반공투쟁에 나선 세계 가톨릭교회의 흐름과 일치한다.(강인철, ‘한국 천주교의 역사사회학’)

한편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주한 외교사절 가운데 한국 주재 교왕사절이 가장 먼저 쿠데타 지지를 표명했으며, 한국인 천주교지도자들도 기관지 ‘가톨릭 시보’를 통해 ‘반공’을 강조하며 쿠데타 지지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내지 못해 고심하던 쿠데타 세력을 위해 메리놀회 선교사 에드워드 모펫(Edward Moffet)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신자 대통령인 케네디를 설득해 군사쿠데타를 수용·승인하도록 상황을 유도하기도 하였다.(강인철, ‘저항과 투항: 군사정권들과 종교’)

가톨릭 신부와 교도들의 억압을 견딜 수 없어 1901년에 제주도민들이 궐기했던 이른바 ‘이재수의 난,’ 1911년 고해성사 과정에서 알게 된 안명근의 총독 암살 계획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헌병사령관 겸 총독부 경무총감 아카시(明石)를 찾아가 밀고하여 숱한 민족 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105인 사건’이나, ‘인간사육장’이라는 말까지 나온 ‘대구 희망원’ 사태를 일으키고 전두환 정권과 밀착하여 골프장 사업권을 받아낸 대구대교구의 문제는 또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물론 이런 과거의 일들이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시절 한국가톨릭교회가 펼친 인권과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의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독재정권을 지지했던 사실들을 덮은 채 “좋은 일만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되겠는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