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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성 석남사와 영화 소울

기자명 최명숙

인생이란 빈 곳을 채워 나가는 과정

영화 ‘소울’에서 찾은 삶의 의미
석남사서 촬영한 드라마 ‘도깨비’
대중적 불교 사상 반영해 공감 커
마애불 보며 주인공 마음 헤아려 

석남사 영산전 앞 석탑 두 기.
석남사 영산전 앞 석탑 두 기.

안성 석남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영화 ‘소울’이 떠올랐다. 영화 ‘소울’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로 주인공인 조 가드너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던 재즈연주회를 앞두고 맨홀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조 가드너가 사후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수 없다”고 도망친 곳은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석남사에 가면 마치 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보고 또 본 ‘소울’과 석남사에서 촬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이 풍등 날리는 장면이 내 머리 속에서 오버랩된 까닭이다. 

잠재해 있던 생각들이 바람의 몰이처럼 한꺼번에 일어나는 날이 있는데 석남사 가는 길이 그랬다. 경사진 언덕에 건물이 층층이 서 있는 도량의 풍경은 옛스럽고 소박한 세월의 흔적이 편안하게 묻어난다. 금광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서서 길을 올려다 봤다. 사후세계도 사전세계도 아닌 길. 이 길을 올라 대웅전 앞에 다다르면 어떤 피안이 있는 게 아니라 “인생, 삶의 의미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대사가 적힌 플래카드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계단을 오르는 길 옆에 서있는 전각들 사이로 촉촉한 바람이 휙 불고 산새들도 장단을 맞췄다. 소나기가 지나가는 초여름 산사 풍경을 상상하니 그 운치는 배가 됐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눈이 소복하게 쌓인 대웅전 앞에서 주인공 김신이 풍등 하나를 날리는 장면 못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대웅전은 단출하고 과묵한 자태로 서있고 그 아래 보물로 지정돼 있는 영산전이 겸손하게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석탑이 두 기가 서 있는데 외모는 수수하지만 대웅전과 영산전, 계단길과 어우러져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웅전과 영산전에 참배를 하고 두 탑 사이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금광루가 아득했다. 

발 밑에 새겨진 발자국 두 개가 보였다. 이 발자국은 드라마에서 주인공 김신이 동생 김선과 고려왕 왕여의 사후 안녕을 위해 풍등을 띄운 장소를 표시한 곳으로 짐작됐다. 하얗게 눈 내린 석남사에서 풍등에 동생과 고려왕의 이름을 쓴 종이를 달아 날렸던 장면은 쓸쓸한 듯 하지만  찬란한, 결국 우리의 삶을 도깨비라는 판타지를 통해 투영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에 윤회, 인과응보, 전생, 내생 등 대중적인 불교사상을 반영하고,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배경으로 사찰을 등장해 공감의 폭도 컸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대웅전을 내려와 마애불을 보러 산길을 올랐다. 바람 한 점 없고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만 들리는 산길이다. 영화 ‘소울’에서 보면 어느 시점일까. 주인공 조 가드너가 전생에 떨어져 영혼 22를 만나기 직전의 상황쯤 되지 않을까? 

고려 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은 연꽃 대좌 위에 서 있다. 이목구비와 두광, 신광은 선명하고 가슴에 얹은 양손은 설법인을 했으며 옷주름의 매듭은 방금 묶은 듯 고우면서도 천년의 풍상을 겪어온 흔적이 묻어났다. 

어느 절에 가든 그 곳의 부처님은 삶의 멘토가 되었듯이 석남사를 굽어보는 마애불도 나의 멘토가 되어 앞에 섰다. 마애불은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영화 소울과 닮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며 삶을 갈망했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은 어떠한 목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공과 실패로 나눠진 이분법적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이란 애초에 빈 상태이며, 하나씩 채워 완성돼 가는 것을 새롭게 알아차림하고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주는 것이다. 마애불을 마주보며 영화를 떠올리니 주인공의 마음을 자연스레 헤아리게 된다. 

마애불과 헤어져 안성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석남사로 내려왔으나 몇 분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한 시간 이상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기에 택시를 탈까하고 핸드폰을 드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저녁나절 비 내리는 석남사의 풍경은 더욱 고즈넉해지고 “아 좋다” 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버스를 놓지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어느 것에 집착하는 순간에 변하는 세상의 삶, 바로 그 풍경이 아니었을까!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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