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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저주를 받고 두려움에 떠는 바라문을 교화하다

저주는 꿰뚫어 보는 이에겐 의미 없는 말

무명인 머리 떨어뜨리는 것은
지혜로서 무명을 밝힐 때 가능
저주는 사기꾼의 욕망에 불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괴로워

예나 지금이나 자기 이익이나 원한을 갚기 위해 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저주’가 있다. 힘 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에게 하는 일종의 심리적 복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의 나약한 심리상태를 이용한 전술이기도 하다. 권력이나 재산이 있다고 해도, 강력한 저주를 받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저주’라는 것이 실제 힘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저주는 말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말에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말로 상대방을 위로하기도 하고, 분노하게도 만들 수 있다. 그런 만큼 저주라는 행위에는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저주에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숫따니빠따’는 총 5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마지막 품이 ‘피안도품(Pārāyana Vagga)’이다. 이품에는 서론에 해당하는 ‘서시의 경’이 있는데, 이 경의 주인공은 바라문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나이는 120세에 이른 바바린(Bāvarin)이라는 바라문이다. 어느 날 제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한 바라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오백 금’이라는 많은 재화의 보시를 요구하였다. 이에 바바린은 이미 다 보시하여 베풀 것이 없으니 양해를 구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바라문은 바바린에게 ‘지금부터 이레 후에 당신의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터질 것이오’라는 저주를 퍼붓고 돌아갔다. 이에 바바린은 두려움에 떨며 음식도 먹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이를 본 천신이 그를 가엾이 여겨 ‘그는 머리를 알지 못하는 자로, 단지 재물을 탐내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알려주게 된다. 이에 바바린은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구했다. 천신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부처님밖에 없다고 알려주었다.

바바린은 즉시 자신의 16제자를 불러 부처님을 찾아뵙고, 나이 들어 거동이 힘든 자신을 대신하여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 여쭙고 올 것을 부탁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제5품 ‘피안도품(피안에 이르는 길)’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된다.

16명의 제자들은 스승의 분부를 받고 부처님을 찾아뵙게 된다. 16명을 대표하여 아지따(Ajita)가 질문하였다.

[아지따] 바바린은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선인이시여, 우리들의 의혹을 풀어 주십시오.

[붓다] 무명(avijjā)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saddhā)과 깨어있음(sati)과 삼매(samādhi)와 더불어, 의욕(chanda)과 정진(viriya)을 갖춘 지혜(vijjā)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무명(無明)은 말 그대로 ‘밝지 못함’이다. 진리에 밝지 못함이니, 지혜가 없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지혜란 사성제에 대한 바른 통찰이다. 사성제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명이 머리인 까닭은 무명으로 인해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머리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지혜로서 무명을 밝힐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천신은 저주를 퍼부은 바라문은 사기꾼에 불과할 뿐이며,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머리가 무명임을 밝히고 난 뒤 부처님은 그것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믿음, 깨어있음, 삼매, 의욕과 정진, 그리고 지혜가 머리인 무명을 떨어뜨리는 방법인 것이다. 이는 오근(五根), 오력(五力)의 내용, 즉 신(信, 믿음), 근(勤, 의욕과 정진), 염(念, 깨어있음), 정(定, 삼매), 혜(慧, 지혜)이다.

저주는 허황된 말이며, 사기꾼의 그릇된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이를 꿰뚫어보면 저주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힘이 생겨 당사자를 괴롭히게 된다. 이 또한 알지 못하여 생기는 것이니 ‘무명’의 소산일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모두 기뻐하며 예배 올리고,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궁금한 점들을 여쭙게 된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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