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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복력이 없다면 분석하라

기자명 자현 스님

사찰서 자연소리 ASMR 시도는 필패다

젊은 도시계층에 맞는 콘텐츠
교회가 도시로 확장하던 시기
산사만 지킨 결과 교세 위축
명확한 분석으로 변화 읽어야

화두는 선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 중기 이후 선불교가 고려불교를 주도하면서, 화두는 특수용어에서 일반용어로 변모한다. 오늘날 ‘이 시대의 화두’나 ‘커피의 화두는 향기’라는 표현 등은, 화두가 ‘핵심적인 논점’의 의미로 일반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음식점이나 사찰을 갈 때, 화두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잘 되거나, 불가사의하게 안 될 때다.

음식점이 잘 되기 위해서는, 기본인 음식 맛을 필두로 접근성이나 인테리어 또는 친절도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합리적인 판단일 뿐이다.

화두가 되는 곳은, 이 모든 것이 부실해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상황이다. 왜지? 내 판단을 넘어서는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음식점뿐 아니라, 사찰도 이런 경우가 있다. 스님이 성실하고 노력형인데도 진짜 절간(?) 같을 때도 있고, 너무 무성의하고 제멋대로 다 싶은데도 신도들끼리 알아서 잘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스님들은 ‘복’으로 치부한다. 이성적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니, 전생 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에 대한 불교식 표현이 ‘복력이 있어서’라고 하겠다.

유튜브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이다. 특별할 것 없이 먹기만 하는데도 조회 수가 수백만이 나온다. 먹방이 워낙 강세다 보니, 스님 중에 ‘먹방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었다. 해서 내가 ‘스님이니까, 경전을 먹어보라’고 해줬다.

어린 시절 ‘영어 단어를 외우고 사전을 찢어서 먹었다’는 이야기처럼, 경전을 읽고 먹는 경전 먹방인 것이다. “오늘은 ‘금강경’을 먹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1년 동안 ‘화엄경’을 먹어보겠습니다.” 불교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죽을 때까지 콘텐츠 딸릴 걱정 없는 먹방인 셈이다.

농담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먹는다고 다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방에 도전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의 99.99%는 살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만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

또 어떤 분은 손만 나와서 펜글씨를 쓰는데 많은 분이 열광한다. ASMR로 힐링이 된다나? 실제로 사찰 유튜브에서 자연의 소리를 ASMR로 시도한 적이 있다. 나는 이게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 유튜브의 주 시청 층은 50대 이상인데, 이분들은 자연의 소리를 지겹도록 듣고 산 세대가 아닌가! ASMR은 도시의 젊은 분들에게나 맞는 콘텐츠다. 결과는 실패였다.

사실 유튜브에서는 개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예쁘고 귀여운 반려동물 콘텐츠는 치트키의 필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율장에서 부처님이 금지하신, 동물을 키울 수도 없지 않은가!

복이 있다면 시류를 따르지 않아도 터진다. 그러나 복이 없으면 제아무리 시류를 앞질러도 언제나 절간(?)일 뿐이다. 특히 유튜브에는 AI라는 강력한 신이 존재하고, 이 AI에 의해서 몇만의 구독자와 조회 수가 쉽게 갈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부처님께 AI에게 간택 받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복력은 분명 AI도 넘어선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전생 복이라는 점이다. 즉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노력해서 재벌이 되는 것보다 재벌 아버지를 두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재벌 아버지가 없다. 그러므로 두각을 내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분석하고, 자신에게 맞는 최선을 찾아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1등은 아니지만, 평균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0∼90년대 교회가 도시로 나올 때, 불교는 전통에 매몰되어 산사만을 지켰다. 이 판단이 오늘날 기독교에 밀린 불교의 자화상이 되었다. 유튜브와 4차 산업 혁명은 70∼90년대의 변화보다도 더 큰 격변이다. 이런 점에서, 복력이 없는 분들일수록 더욱더 과감하게 뛰어들고 냉철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이것이 현대불교의 가장 큰 화두이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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