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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여점 도판과 함께 펼쳐지는 한국불화의 정수

  • 불서
  • 입력 2021.06.16 14:31
  • 수정 2021.06.17 09:12
  • 호수 1590
  • 댓글 4

한국불교회화사
문명대 지음 / 다할미디어 / 756쪽 / 5만5000원

삼국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불화 통사적으로 체계화
50여년 불화연구 성과 집대성, 화사들도 계보별로 총정리
“불화는 불교신앙·미술 결정체이며 눈으로 보는 불교역사”

한국미술사의 거장 문명대 교수의 50년 학문 열정이 벼려지고 수고로움이 더해져 완성된 이 책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시금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정주연 기자
한국미술사의 거장 문명대 교수의 50년 학문 열정이 벼려지고 수고로움이 더해져 완성된 이 책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시금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정주연 기자

거장은 일정 분야에서 빼어난 인물을 일컫는다. 천재가 뛰어난 재능에 방점이 찍힌다면 거장은 재능보다 성과물에 더 무게가 실린다. 거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한결같음과 인내가 전제될 때 비로소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한국미술사의 거장이다. 올해 6월14일로 꼭 팔순을 맞은 문 교수는 1960년대 중반 경북대 박물관 조교로 근무하며 미술사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문화재를 손수 정리하며 ‘옛것’에 심취한 그는 관련 고문헌을 해석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안목을 넓혀갔다. 1971년, 사람·고래·호랑이·사슴 등 307점 가량의 표현물이 음각으로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국보)를 발견해 처음 학계에 보고한 것도 문 교수였다. 이후 그에게는 숱한 ‘최초’가 따라 붙었다.

국내 최초로 석굴암 불상을 종합적으로 연구했으며, 수많은 국내 절터를 비롯해 발해·인도·파키스탄·간다라 불교사원지를 한국 최초로 발굴, 불교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6년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불교미술 연구의 기반을 다졌고, 서울시·문화재청·성보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불교문화재를 조사하고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박사제자 40여명,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제자도 20여명이 넘는다. 코로나19가 극성스러운 올해와 작년에는 걸렀지만 매년 초 신년모임에 참석하는 제자들도 100여명에 이른다.

문 교수가 정년퇴임한 건 2006년, 그러나 학문의 퇴임은 아니었다. 늘 그랬듯 지금도 아침에 연구소에 출근해 저녁이 돼서야 퇴근한다. 대학 연구실에서 종로 가회동 연구실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다. 딱히 취미가 없는 그는 주말에도 출근한다. 평일에는 회의가 잦고 손님들을 만날 일이 많지만 주말에는 오롯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교수가 지금까지 쓴 정식 논문만 390여편, 불교회화와 불교조각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반회화 및 건축, 공예 등을 다룬 논문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논문 편수는 인문학계에선 독보적인 수준이다. 여기에 단독 저술이 21권, 공저도 47권에 이른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에도 문 교수가 얼마나 성실히 학자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대학 강단을 물러나서도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공모·지원하는 대형 학술프로젝트에 선정돼 간다라미술을 조사하고 국내외에 흩어진 조선시대 기록문화재 자료집을 집대성했다.

최근 발간된 ‘한국불교회화사’도 한국연구재단의 우수학자 연구과제로 선정돼 진행한 학술프로젝트다. 이 책은 문 교수의 긴 학문 여정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닐뿐더러 한국회화사 연구에서도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문 교수는 1970년대 초 동국대에서 불화의 이론과 실기 지도를 계기로 1978년 국내 첫 불화 개설서인 ‘한국의 불화’를 펴냈었다. 이후 연구를 심화시켜 150여편의 불화 관련 논문을 썼으며, 국내는 물론 일본 등 해외 소재 불화 조사를 전면적으로 진행하면서 불화에 대한 안목도 더욱 깊어졌다. 2010년 본격적인 집필에 착수해 2015년 1차로 완성하고 다시 5년여의 전면적인 보완과 10년 이상 일본 소재 고려·조선 전반기 불화의 정밀조사를 병행하면서 책의 완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고려의 김우가 그린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보살도는 높이 419cm나 되는 거대한 작품으로 서양의 모나리자를 능가한다는 게 문 교수 평가다.
고려의 김우가 그린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보살도는 높이 419cm나 되는 거대한 작품으로 서양의 모나리자를 능가한다는 게 문 교수 평가다.
1307년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절 고개에 올라 방광하는 일만이천 담무갈보살에게 절하는 모습과 이를 그린 노영 자신의 자화상까지 포함시킨 아미타구존도.
1307년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절 고개에 올라 방광하는 일만이천 담무갈보살에게 절하는 모습과 이를 그린 노영 자신의 자화상까지 포함시킨 아미타구존도.

문 교수가 집요하리만치 오랜 세월 불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불화가 곧 불교신앙의 결정체이자 한국 미술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문 교수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이 일본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보살도다. 높이 419cm나 되는 거대한 작품임에도 안정된 구도와 극도의 섬세함, 정결하고 세련된 의상과 선명한 색상의 조화로 관음보살의 자비와 위엄을 한껏 살려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명작이라는 모나리자보다 격조 높은 당대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게 문 교수 평가다. 또 무위사 아미타후불벽화, 신원사 노사나괘불도, 칠장사 오불삼보살회도, 화엄사 괘불도처럼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는 불화들이 수두룩하다. 색과 선으로 빚어낸 아름답고 장엄하며 심오한 불교사상이 불화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가 “불화는 눈으로 보는 불교사”라고 강조하듯 종교적·예술적인 측면 외에 역사적인 요소도 많다. 조선 초부터 불화에는 불화조성에 돈을 낸 시주자, 불화조성 주관자, 그림 작업을 담당한 화사 등이 기록돼 있어 불화를 조성하게 된 사회적·경제적 의미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신행과 종파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담고 있는 불화들이 상당수에 이르며, 1307년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절 고개에 올라 방광하는 일만이천 담무갈보살에게 절하는 모습과 이를 그린 노영 자신의 자화상까지 포함시킨 아미타구존도나 억불시대 왕실의 발원으로 조성된 흥미로운 불화들도 많다. 특히 조선 특유의 불화인 감로도에는 벼락, 호랑이, 독사, 추락사 등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대상들과 솟대놀이, 꼭두각시놀이, 굿, 점술, 싸움, 대장간, 상점, 시장 등 풍경도 등장한다.

문 교수는 “불화에는 색과 선으로 빚어낸 아름답고 장엄하며 심오한 불교사상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그림은 신원사 노사나괘불도(1664년)
문 교수는 “불화에는 색과 선으로 빚어낸 아름답고 장엄하며 심오한 불교사상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그림은 신원사 노사나괘불도(1664년)

‘한국불교회화사’가 한국의 전통미술을 이해하는 시금석이자 한국불화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결정판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땅에 불교가 수용된 372년부터 조선이 역사에서 사라진 20세기 초까지 한국의 불화를 통사적으로 체계화하고 있다. 사찰 전각 안팎에 그려진 벽화, 종이나 천에 그린 족자나 액자 형태의 탱화, 불경에 그림을 그린 경화, 불·보살존상도, 나한도, 신중도 등 다양한 형태의 재료와 주제로 이뤄진 5000여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 검토를 거쳐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이 중 엄선된 불화 800여점의 도판이 수록돼 있어 시대별 불화의 도상 및 양식 특징을 명료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 불화를 그렸던 화사(畫師)들을 계보별로 총정리해 그들의 작품과 특징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점도 비범한 성과다.

불화의 세계는 심원하다. 출세간의 이치, 세간의 천태만상, 보살심과 중생심까지 고루 담겼으니 접근이 용이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도 팔순 거장의 50년 학문 열정이 벼려지고 수고로움이 더해져 불화에 관한 정밀한 나침반을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누구라도 헤매거나 포기하지 않고 느긋이 불화의 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문 교수의 또 다른 역작인 한국조각사 집필도 마무리 단계라니 참으로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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