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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자기를 보호하는 사람

기자명 마성 스님

자기 보호하는 최선은 몸·입·뜻으로 쌓는 선행

몸·입·뜻으로 나쁜 행위 저지르면 자신 보호하지 않는 자
악업 지음으로 타인에게 해 입힌 자 결코 안전할 수 없어
‘자호호타’ ‘상구보리 하화중생’ 대승불교 이념으로 발전해

스리랑카 고대수도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에 위치한 인공 연못.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만든 인공 연못은 아바야기리 위하라(Abhayagiri Vihāra, 無畏山寺) 스님들의 목욕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스리랑카 고대수도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에 위치한 인공 연못.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만든 인공 연못은 아바야기리 위하라(Abhayagiri Vihāra, 無畏山寺) 스님들의 목욕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앗따나락키따-숫따(Attānarakkhita-sutta, 自護經)(SN3:5)’에서 꼬살라국의 빠세나디(Pasenadi, 波斯匿) 왕은 붓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다. 붓다는 왕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었다.

한때 빠세나디 왕이 한적한 곳에 앉아 있을 때, ‘누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자이며, 누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자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가서 붓다를 친견하고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든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상병(象兵)으로 보호하고, 마병(馬兵)으로 보호하고, 전차병(戰車兵)으로 보호하고, 보병(步兵)으로 보호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보호는 밖의 것이고 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자들이다.”[SN.Ⅰ.72-73]

빠세나디 왕은 상병, 마병, 전차병, 보병이라는 네 군대가 밤낮으로 자기를 호위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밖의 것이고 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왕은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왕이 밖의 네 군대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고, 안으로 세 가지 나쁜 행위, 즉 삼업(三業)을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왕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상병으로부터 보호하지 않고, 마병으로 보호하지 않고, 전차병으로 보호하지 않고, 보병으로 보호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자들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보호는 안의 것이고 밖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자들이다.”[SN.Ⅰ.73]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몸과 입과 뜻으로 좋은 행위를 짓는 것이다. 이른바 선행을 쌓는 것을 말한다. 선행 외에 별도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자이다. 반면 몸과 입과 뜻으로 좋은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는 자이다. 붓다는 빠세나디 왕이 이렇게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그를 격려해 주었다.

“몸으로 단속하는 것은 훌륭하다. 말로 단속하는 것은 훌륭하다. 마음으로 단속하는 것은 훌륭하다. 모든 곳에서 단속하는 것은 훌륭하다. 모든 곳에서 단속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 그를 일러 자기를 보호하는 자라 한다.”[SN.Ⅰ.73]

니까야의 ‘앗따나락키따-숫따’에 대응하는 한역은 ‘잡아함경’ 제46권 제1229경이다. 두 경의 내용이 일치한다. ‘잡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왕이시여, 만일 몸으로 악행을 하고 입으로 악행을 하며 뜻으로 악행을 하면 그것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잘 보호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상군(象軍)・마군(馬軍)・차군(車軍)・보군(步軍)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면서 스스로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밖은 보호하고 있을 지라도 안을 보호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시여, 그것은 자기를 보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T2, p.1226b]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즉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모든 업을 잘 단속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 스스로 지키는 것/ 이것을 잘 지켜 보호하는 것이라 한다.”[T2, p.1226b, “善護於身口, 及意一切業, 慚愧而自防, 是名善守護.”]

위에서 살펴본 두 경의 내용은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일생동안 삶의 중요한 경책으로 삼아야 할 덕목이다. 인간은 몸과 입과 뜻으로 선(善)을 행하기도 하지만, 악(惡)을 더 많이 행한다. 선을 행한 자는 행복을 얻지만, 악을 행한 자는 불행이 뒤따른다. 또 선을 행한 자는 두려움이 없지만, 악을 행한 자는 두려움 때문에 잠 못 이룬다.

사회 저명인사나 유명한 정치인 중에서도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적을 많이 만들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언제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늘 그들은 불안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부터 암살당한다.

결국 선행으로 덕을 쌓아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악업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자는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특히 남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위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잡아함경’ 제24권 제619경에서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곧 남을 보호하는 것[自護護他]”이라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남을 보호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가르침은 나중에 “위로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下化衆生]”고 하는 대승불교의 이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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