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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내가 가진 모든 것 주겠다는 마음 갖는 게 포교의 시작입니다

전생에 지은 수많은 업이 지금 모습으로 나타나고 미래도 결정
불교 지식 전하기에 앞서 부처님 마음 전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행복의 문 활짝 열게 하고 행복의 문을 찾아주는 포교사 돼야

오늘은 ‘포교사의 자세와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제가 출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는 11살 때 통도사로 출가를 했습니다. 당시 자운 큰스님께서 계셨습니다. 자운 큰스님은 성철, 향곡 큰스님과 법으로 한 몸입니다. 불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운허, 영암 큰스님과 한 몸입니다. 이분들이 한국불교를 일으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큰스님께서는 43세셨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절에 오자마자 저에게 3000배를 시키셨습니다. 참회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죄를 지어 참회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빈 법당에서 9시간 동안 3000배를 했습니다. 그렇게 3000배를 마치고 나니 바로 그 자리에서 사미 10계와 보살계를 주시면서 법명을 ‘혜총’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 3000배를 하라고 하셨을 때, 저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죄가 없을까요? 죄업은 우리 얼굴과 몸에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른들께서는 “보기만 해도 안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살생을 많이 했고 못된 짓을 많이 했던가. 시골에 살면서 가을에 메뚜기를 많이 잡아먹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장난을 했습니다. 고추잠자리를 잡아 꼬리를 잘라버리며 놀기도 했습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업을 짓는 연속입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키가 작습니다. 해인사 승가대학 다닐 때가 열여섯이었습니다. 친구들은 키가 큰데 나만 안 자라는 것 같아서 열등감이 컸습니다. 그때 우연히 신문을 보니 광고에 ‘신장기’라고 하는 키 크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신장기를 이용하면 3개월간 5~7cm 큰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문 광고를 믿고 그 기계를 구해서 3개월을 사용해 봤는데 키가 크지 않았습니다. 정성이 부족한가 싶어서 두 번 더 반복했지만, 그 시절 키가 지금 키입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서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열등의식이 깊어지니 마지막에는 ‘그래, 이 몸을 가지고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차라리 죽자. 죽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굳혔습니다. 사실 제가 열한 살 나이로 절에 들어올 때는 ‘서른 살밖에 살지 못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살아보겠다고 왔습니다. 그런 제가 열일 곱에 스스로 죽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침 그때 자운 큰스님께서 경전과 율장을 인쇄하기 위해 외출을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큰스님과 함께 부산 감로사에서 내려와 지게꾼으로 부전시장에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장에서 다리가 없는 사람이 몸에 타이어 튜브를 감고서 구걸을 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다리가 없으니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고 뜀박질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구나. 대소변은 또 얼마나 불편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비로소 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살고 있는가. 작은 키를 키우겠다고 애를 쓰고, 키가 크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숨마저 버리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헛된 욕심이었던가.’ 저분이야말로 저에게 선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죽겠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왜 키가 작은 것은 것일까’라는 의문에 훗날 부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생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생과 그 전생,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생을 거쳐서 오늘까지 왔고 오늘을 기점으로 또 앞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갈 겁니다. 수십만 년 전부터 만들어 온 것이 나의 몸이라면, 앞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의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상통합니다. 이것이 포교사의 자세이고 포교사의 역할입니다. 남을 포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포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 자기 육체를 먼저 포교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자기를 보고 세상을 봐야 합니다.

저는 전생에 소위 갑질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장 노릇을 하면서 아래 사람들에게 너무 갑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내 덕으로 먹고산다는 아만심 때문에 다시 태어날 때 작은 키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담에도 나옵니다. 저는 전생담에서 이 구절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마음을 푸근하게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주고 말을 주고 육체를 주고 내 가진 물건을 주는 것, 그것이 포교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집안이 편안하고 가족이 편안하고 이웃이 편안합니다. 그것이 극락세계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해드릴까요?”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무엇을 해드릴까요?” 이웃을 위해서도 “무엇을 해드릴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포교사의 자세입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부루나 존자는 설법과 전법에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부루나 존자가 고향에 가서 중생 교화를 결심하고 부처님께 허락을 청합니다. “세존이시어,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행에 힘썼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데 저에게 명심해야 할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부루나여, 그 지방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들었는데 만일 사람들이 그대를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부루나 존자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멩이, 손, 발길질로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그들이 나무나 돌을 가지고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부루나 존자는 “그때는 칼을 가지고 나를 상하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또  “만일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히는 날에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물으니 부루나 존자는 “칼로 상처를 입힐지라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또 “그들이 칼로서 그대를 죽이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자 부루나 존자는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인생의 온갖 고뇌가 싫어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저의 목숨을 끊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는 번거로움을 덜어 준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요즘 삶이 괴로워 자살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시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부루나 존자는 상대방이 몸을 스스로 버리지 않고 존자의 목숨을 해한 것이니까 그것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루나 존자의 서원에는 ‘내 몸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불석신명(不惜身命),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을 펼치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보현행원품 상수불학원’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살갗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깎아 붓으로 삼고 피를 찔러 먹으로 삼아 경전을 수미산같이 써 내려가더라도 진리를 존중하기 때문에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여러 가지 이유로 이 포교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어떤 분은 불교가 그냥 좋아서, 어떤 분은 명예심에서, 어떤 분은 부처님께 입은 은혜를 갚고자 이 길을 나섰을 것입니다. 동기가 어떻든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전하는 여래의 사자인 여러분은 불석신명의 정신자세로 전법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교사는 대중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여야 하겠습니까? 첫째, 포교사는 남 앞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중을 기쁘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핀잔을 주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칭찬하고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법회 날에는 대중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대중에게 눈웃음으로 먼저 다가가고 등을 두드려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손을 꽉 잡아주기도 하고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면서 마음으로 대중과 연결돼야 합니다. 

두 번째, 말로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말하는 벗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의 지식을 전하는 전법자이기에 앞서 부처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로 아무리 불교가 좋다고 해도 법을 전하는 사람의 언행이 일치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를 항상 염두에 두고 대중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포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이끄는 포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로 우주의 주인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법화경’에 나오는 가난한 동자처럼 무지몽매해 자기를 비하하고 나는 무능하다고 고집하면서 스스로 괴로움에 빠져 삽니다. 이런 대중에게 부처님은 ‘주인인 너를 두고 어디를 찾아 헤매는가’ 하고 일깨우셨습니다. 행복의 문을 열게 하고 행복의 문을 찾아주는 포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5월29일 조계종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에서 봉행된 ‘불기 2565년 포교사 고시 합격자 연수교육’에서 혜총 스님이 ‘포교사의 자세와 역할’을 주제로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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