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사회 공동체의 미래

기자명 민순의

대한민국의 단일민족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고인류에 대한 DNA 추적 기술 발달로 한반도에 처음 국가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남방과 북방의 민족 혼성이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문헌상의 기록을 통해서도 해상과 육로를 통해 ‘바깥’의 사람들이 우리의 ‘안’에 스며들어와 지금의 한반도인을 형성해 왔음이 확인되고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19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것이며, ‘민족주의’ 또한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자민족의 우월성과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내포하게 된 이념이므로 코스모폴리탄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미 20세기 말부터 한국사회에서 대두되었던 바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에게 민족의 의미는 여전히 각별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인에게 민족이란 열강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타자로서 자신의 존립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 기제였고, 그 공격에 대한 폐해를 21세기 현재까지 남북분단이라는 아픔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약소국 민족주의 논리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은 주저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당대 유럽의 민족 관념을 독일형과 프랑스형으로 구분하여 논한다. 당시의 독일인들은 민족에 관하여 혈통의 단일성을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는 전근대 이래 유럽의 다양한 민족들이 교류해왔던 지정학의 영향으로 혈통이 아닌 문화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민족을 사유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르낭은 혈통의 단일성이라는 다분히 이상적인 원형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문화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민족의 개념을 잡아나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르낭의 이러한 민족 관념 구분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너무 당연하게도 혈통의 단일성만을 민족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인 단일민족주의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인류의 역사상 지구상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지역의 사람도 종족 순수성을 유지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처럼 어차피 단일민족이란 불가능한 개념이므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폐기해야만 할 것인가. 민족의 미래에 대한 많은 고민들을 그저 무용하고 무익한 것으로 치부하고 말일인가 말이다. 이 대목에서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5·1경기장 연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함께 살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민족 개념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는 더 이상 약소국의 방어적 논리가 아니다. 어느덧 세계열강의 반열에 오른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열세에 놓인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하여 우월감을 표출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 노동자 또는 난민의 유입에 대하여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경계심에는 민족 감정뿐 아니라 국내의 정치경제적 파장에 대한 고려까지 들어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외래인의 언어나 외모 내지 관습에 대한 직관적 이질감이나 또는 그들의 유입에 따른 공동체의 훼손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시간을 두고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들어 보자.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풍속과 전통도 변화하는 것이다. 100년 뒤 ‘우리’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같을 리 없다. 오랜 가족과의 단절된 기억은 회복하고, 새로운 이웃과는 정을 나누어보자. 다만 상호간 존중과 합의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만 잊지 말자. 중요한 것은 문화 동질성의 재건과 증축이다. 필경 문화적 공동체가 민족의 토대가 되는 것이므로. 다양한 모습들이 저마다의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 내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면 될 일이다. 부처님께서 항시 강조하셨던 것이 상가(saṅgha)의 화합이었다. 평화롭게, 공존함. 여기에 한국 공동체의 미래가 있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nirvana1010@hanmail.net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