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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시간

기자명 성원 스님

때가 되면 절로 피던 꽃들이
제초제 때문에 점점 사라져
불보살의 세계는 ‘화장세계’
꽃 가꿔 피우진 못하더라도
불자 스스로 세상의 꽃 돼야

법당 둘레 활짝 핀 접시꽃이 가득하다. 육지에서는 한여름을 장엄해 주는 꽃이지만 제주는 계절이 빠르다. 수국도 다 져버리는 시기, 한 켠에서 나리꽃 망울이 가득 부풀어 올라 내일이라도 툭 터져 나올 듯하다. 

‘이러다 모든 꽃들이 다 터져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바라보니 늦게 파종한 봉선화가 꽃밭 가득 힘껏 솟구치고 있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도량에 가득 차오르고 있다. 가을 생각에 국화도 넉넉히 기르다 보니 늘 새 계절의 설렘이 가득하다.

꽃이 좋다. 무채색 무기질의 토양에서 푸른 잎을 피우며 자라나 형형색색의 빛깔을 뿜어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 신비감에 꽃을 더 좋아한다. 꽃 배경으로 사진 찍을 때마다 사람들이 웃는다. 스님이 꽃밭에서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나 보다.

예전에는 나리꽃이 피는 곳에는 매년 나리꽃이, 채송화나 봉선화밭에는 채송화나 봉선화가 때에 맞춰 저절로 자라나 꽃을 피웠는데 어느 때부터 그렇지 않게 됐다. 

이유가 몹시 궁금했었는데 누군가가 알려 줬다. 제초제를 많이 뿌리기 때문이란다. 가슴 아프다. 선대의 삶이 꽃핀 자리에 후대의 꽃이 자라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대의 단절이 우리 인간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씁쓰레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바라보니 세상에 내가 했던 일이, 한 계절 잠깐 피어 세상에 아름다움을 전한 꽃만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교만심에 마치 엄청난 일을 했다고 떠들기는 하지만 한 송이 꽃만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꽃이 더 좋다. 좋아서 꽃 가꾸기에 힘쓰니 직원들이 “스님은 참 부지런하다”고 한다. 싱겁게 웃어 줄 뿐이다.

세금 내는 일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다. 딱 한번 세금 내는 일이 즐거울 때가 있다. 길거리 가로변에 꽃을 가득 가꾸어 활짝 피어 있을 때다. 누구였을까, 참 궁금하다. 거리에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행복한 미소를 나눈다는 것을. 

가을날 차로 도로를 달릴 때마다 휭하니 지나치는 차도 옆 코스모스를 가득 심어 꽃피운 사람은 또 누구일까 궁금해하면서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많다는 생각에 또 한번 행복해진다.

정말 꽃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는 잿빛 승복과 화려한 유채색의 꽃밭이 어색해 보일지 모르지만 불교의 이상적 세계가 꽃으로 가득 장엄된 화장세계 아닌가! 꽃이 없다면 어떻게 불보살이 머무는 화장세계를 이룰 수 있을까? 

실체의 꽃이든, 상상 속 관념의 꽃이든, 모든 사람들이 머물기만 해도 좋은 기분 가득해지는 꽃 가득한 세상을 어서 만들고 싶다.

계절이 도량 가득 꽃을 일구어내는 여러 날 동안 우리들은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몇 송이나 길러냈을까? 꽃을 일구어 피워내지 못한다면 불자들은 스스로 세상에 한 송이 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불러 줄 때 하나의 의미가 되어 다시 피어나는 세상의 꽃이 되고자 하는 삶이 불자들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꽃이 좋다. 여름이 시작하는 고즈넉한 사원에서 작은 의미가 되어 세상에 향기를 전하는 꽃이 되면 참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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