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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열반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장자의 아들을 교화하다

집착 있으면 완전히 열반에 들지 못한다

열반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부처께 묻는 장자 아들 소나
욕망과 분노 완전히 버리면
그 자리가 바로 열반과 해탈

열반(nibbāna)은 불교수행의 목적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해탈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열반, 해탈, 깨달음의 의미를 엄밀하게 분석하면 다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의 동의어로 파악해도 큰 무리는 없다. 그런데 열반은 ‘죽음, 소멸’과 같은 의미로도 이해된다. 하지만 초기불교에서는 그 의미가 거의 확정적으로 사용되는데,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사라진 상태(탐진치의 지멸)’로 설명된다.

‘상윳따 니까야’4권에 ‘소나의 경(Soṇasutta)’이란 경전이 있다. 이 경전에서 장자의 아들인 소나는 부처님께 열반에 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쭙게 된다. 이것을 주제로 한 다른 경전(나꿀라삐따 숫따 Nakulapitasutta)도 동일한 내용을 전한다.

[소나]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들은 이 세상에서 현세에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합니까? 그런데 어떤 중생들은 이 세상에서 현세에 완전한 열반에 드는데, 그것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합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과론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냥 인과론이 아니고 연기론적 인과론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인도 원인이지만, 조건(緣, paccaya)이 정말로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소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지금 이 세상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신다.

[붓다]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 청각으로 인식되는 소리, 후각으로 인식되는 냄새, 미각으로 인식되는 맛, 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 정신으로 인식되는 현상들이 있는데, 어떤 중생들은 그것들에 대해서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합니다. 그것들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들의 의식은 그것들에 의존하며 그것들에 집착합니다. 소나여, 집착이 있으면 그 중생들은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12처에 대한 가르침이다. 12처의 가르침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세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객관적인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집착으로 세상을 구성하고, 그 세상을 참다운 세상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위의 부처님의 말씀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현상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음에 들면 기뻐하고 욕망하며 집착한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슬퍼하고 낙담하고 분노하며 집착한다. 결국 우리는 그 대상들이 마음에 들어도, 들지 않아도 집착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욕망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열반이란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소멸’이라는 정의에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드는 사람들은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 등에 대해서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하지 않고, 그들의 의식은 그것들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들에 집착(upādāna)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는지의 여부는 ‘집착’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문제가 생기면 이 세상을 원망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없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우리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에 있다. 욕망과 분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내려놓게 되면 바로 그 자리가 해탈, 열반의 자리라는 것을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니 해탈, 열반은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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