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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수행 ⑥

기자명 박희택

선정과 지혜는 별개가 아닌 상호조응

마명이 선정지혜 합칭한 것은
서로가 상조의 수행이기 때문
정혜쌍수·지관겸수 같은 의미
보시 등 4바라밀 선행이 중요

주요 경전들에서 설해진 3종 수행법은 지관(止觀)수행으로 종합될 수 있다.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의 지관문(止觀門)이 이에 해당된다. 마명은 해석분 끝자락에서 해행발심(解行發心)을 강설하면서 6바라밀 수행을 언급하였는데, 이어지는 수행신심분에서는 5문으로 수행의 체계를 재정리하였다.

5문은 시문(施門, 보시), 계문(戒門, 지계), 인문(忍門, 인욕), 진문(進門, 정진), 지관문(地觀門)이다. 말하자면 5문은 5바라밀이라 할 수 있고, 지관문은 6바라밀 중 선정과 지혜를 합칭한 것이다. 마명이 선정과 지혜로 나누어 강설하지 않고 지관으로 합칭한 것은, 선정과 지혜가 상호조응(相互照應)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것은 사마타와 위파사나가 별개의 수행이 아니라, 고요수행(사마타)에서 통찰수행(위파사나)으로 나아가고, 통찰수행에서 고요수행으로 돌아오는 상조(相照)의 수행임을 뜻한다. 이를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하고, 천태에서는 지관겸수(止觀兼修)라 하며, 마명은 지관구행(止觀俱行)이라 표현하고 있다. 마명의 언설을 들어보기로 한다.

“걸어갈 때나 서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늘 마땅히 그침[止]과 살핌[觀]을 함께 수행하여야 한다(若行若住若臥若起 皆應止觀倶行).”

그러면서 마명은 그침수행의 공능에 관하여 “그침수행은 범부로 하여금 세상일에 대한 집착을 다스리게 하며, 이승의 수행자로 하여금 비겁하고 나약한 생각을 버리게 한다(若修止者 對治凡夫住著世間, 能捨二乘怯弱之見)”고 하였고, 살핌수행의 공능에 관하여는 “살핌수행은 이승의 수행자로 하여금 대비를 일으키지 않는 좁고 용렬한 마음의 허물을 다스리게 하며, 범부로 하여금 선근을 닦지 않음을 버리게 한다(若修觀者 對治二乘不起大悲狹劣心過, 遠離凡夫不修善根)”고 하였다.

이 공능의 강설을 통해 그침수행은 사마타에, 살핌수행은 위파사나에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사마타와 위파사나가 상호조응하듯이, 그침수행과 살핌수행도 함께 수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마명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그침과 살핌이라는 두 수행은 함께 서로 도와 이루어져야 하며, 서로 떨어져서 각각 따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是止觀二門 共相助成, 不相捨離). 그침과 살핌이 동시에 갖추어지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 없다(若止觀不具 則無能入菩提之道).”

지관겸수 곧 그침수행과 살핌수행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선나이자 우필차이다. 6바라밀의 다섯 번째인 선정은 선나(우필차)가 아니라 그침수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이 지점에서 명료히 확인할 우리의 수행의 대도는 6바라밀 내지 5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 전체라는 점이며, 그렇기에 지관 이전에 보시와 지계, 인욕과 정진의 4바라밀을 온전하게 닦아야 수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 된다.

‘대승기신론’은 그침수행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두 가지 수행을 설한다. 첫째는 좌선수행이다.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 뜻을 바로 하되(端坐正意),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온갖 망상은 생각을 따라 모두 없애되(一切諸想隨念皆除), 또한 없애는 생각마저 비우는(亦遺除想) 수행이다. 둘째는 수연(隨緣)수행이다. 좌선에 그치지 않고 일어나 오가며, 대상을 따라 살펴서(隨順觀察), 오래 익혀 무르익게 하여 마음이 머무는(久習淳熟其心得住) 수행이다.

살핌수행의 구체적 방법론으로는 네 가지 관법을 설한다. 곧 법상관(法相觀), 자비관, 대원관(大願觀), 정진관이 그것이다. 법상관은 인연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간 유위법의 실상을 관찰하는 관법이다. 대원관은 온갖 고뇌에 빠진 중생이 열반의 으뜸가는 즐거움을 얻기를 발원하는 큰 서원의 관법이다.

한편 그침수행은 정념(正念, sati)으로, 살핌수행은 정지(正知, sampajāna )로 이해할 수 있다. ‘염처경’에 설해진 바와 같이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사념처에 대한 마음챙김(mindfulness)으로 고요에 머물게 되고, 사태의 공성과 본성을 직관하는 알아차림(awareness)으로 통찰을 얻게 된다. 정념과 정지는 쌍둥이처럼 병행되어야 하기에 ‘정념정지’로 표현되며, 지관겸수와 상응한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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