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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원망

기자명 마성 스님

수행으로 지혜 얻어야 해탈에 다다른다

평생 걸쳐 승가에 보시한 아나타삔디카 장자, 죽기 전 법문 청해
사리뿟따, 출가자들 법문 설해 아나타삔디까 고통 떨치게 도와
지혜 구족 못한 보시·봉사, 허업에 불과함 간과해서는 안될 것

고대 인도 꼬살라국 수도 사왓티(Sāvatthī, 舍衛城)에 위치한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급고독) 장자의 수뚜빠(stupa, 무덤).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고대 인도 꼬살라국 수도 사왓티(Sāvatthī, 舍衛城)에 위치한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급고독) 장자의 수뚜빠(stupa, 무덤).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재가신자로서 초기불교교단에 크게 공헌한 인물은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장자이다. 그의 본명은 수닷따(Sudatta)였지만, ‘아나타삔디까’ 즉 ‘외로운 이를 돕는 자’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그를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고 부른다.

그는 꼬살라국에서 제일가는 부호였다. 그가 사업차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붓다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는 붓다를 뵙고 싶은 마음에 밤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가 성문이 열리자 세존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 직접 붓다를 친견하고 재가신자가 되었다. 그는 꼬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에 제따(Jeta) 왕자의 소유였던 동산을 구입하고 그곳에 불교사원을 건립하여 승단에 기증했다. 이 사원을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 하는데,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부르기도 한다. 붓다는 19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일생동안 붓다와 그 제자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승가에 필요한 필수품 일체를 보시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널리 보시했다. 그의 전 재산은 보시로 소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재물을 승가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했던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사자(使者)를 보내 붓다와 사리뿟따(Sāriputta) 존자에게 자신을 대신해 문안을 드리도록 하고, 또 특별히 사리뿟따 존자에게는 자기의 처소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붓다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붓다께는 문안 인사만 전하도록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리뿟따 존자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처소를 방문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견딜만한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참으로 견디기 어렵고, 고통은 날로 심해져 가라앉질 않으며, 차도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을 설했다. 그것이 바로 ‘아나타삔디꼬와다-숫따(Anāthapiṇḍikovāda-sutta, 敎給孤獨經)’ (MN143)이다. 이 경의 내용은 심오하여 초보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요약하면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형상[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대상[法]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눈의 알음알이[眼識]・귀의 알음알이[耳識]・코의 알음알이[鼻識]・혀의 알음알이[舌識]・몸의 알음알이[身識]・뜻의 알음알이[意識]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눈의 감각접촉[眼觸]・귀의 감각접촉[耳觸]・코의 감각접촉[鼻觸]・혀의 감각접촉[舌觸]・몸의 감각접촉[身觸]・뜻의 감각접촉[意觸]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眼觸受]・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耳觸受]・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鼻觸受]・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舌觸受]・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身觸受]・뜻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意觸受]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땅의 요소[地]・물의 요소[水]・불의 요소[火]・바람의 요소[風]・허공의 요소[空]・식의 요소[識]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형상[色]・감각작용[受]・표상작용[想]・의지작용[行]・의식작용[識]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이 세상을 집착해서도 안 되고, 저 세상을 집착해서도 안 된다. 또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사리뿟따 존자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설했을 때, 그는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집착이 생기거나 실의에 빠집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집착이 생기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스승님을 섬기고 마음을 잘 닦은 비구들을 섬겼지만 저는 이러한 법문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에게 이러한 법문을 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출가자들에게 이런 법문을 설합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그렇다면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에게도 이러한 법문을 설해주십시오. 사리뿟따 존자시여, 눈에 먼지가 적게 들어간 선남자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않으면 그들은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이런 법문으로 가르침을 설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가 떠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도솔천에 태어났다.[MN.Ⅲ.258-263]

이상은 ‘아나타삔디꼬와다-숫따’에 기록된 내용이다. 사리뿟따 존자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설한 가르침의 핵심은 보고 듣고 생각으로 일으킨 일체의 현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듣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났다. 이른바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갈애와 자만과 사견이라는 세 가지 움켜쥠을 놓아버림으로써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왜 그와 같은 가르침을 예전에 설해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듯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나타삔디까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승려들은 재가신자들에게 보시의 공덕이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진작 붓다의 가르침을 설하는 사찰은 많지 않다. 초하루나 보름 법회에서도 불공 등 의례가 주류를 이루고 설법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말이 전도되었다.

보시나 봉사를 통해 쌓은 공덕으로 내세에 좋은 곳[善處]에 태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보시나 봉사를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얻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혜를 구족하지 못한 보시나 봉사는 허업(虛業)에 불과하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92호 / 2021년 7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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