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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도둑질한 기녀를 찾아 나선 공자들을 교화하다

대기설법, 상대 수준과 처지·상황에 따른 법문

기녀 찾아나선 귀공자들에게
인과의 이치에 대해 차제법문
말과 언어가 힘 갖기 위해서는
의미와 참된이익, 상황 맞아야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유희를 즐기며, 좋아한다. 앞으로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명이 갖는 특징이 아닐까도 싶다. 오죽하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인간의 본질을 유희, 즉 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는 호이징가는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이 룰을 지키지 않으면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율장 ‘대품’에 나온다.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부처님께서 바라나시(Bārāṇasi)에서 우루벨라 지역으로 가는 길에 한 숲에서 잠시 앉아 계셨다. 이때, 서른 명의 귀공자들이 부부 동반으로 숲에서 놀고 있었는데, 한 공자는 부인이 없어 대신 기녀를 동반하여 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놀이에 정신없을 때, 기녀가 자신과 함께 온 공자의 재물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놀이의 룰이 깨진 것이다. 이에 공자들 일행이 기녀를 찾아 나섰다가 부처님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자들]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보셨습니까?
[붓다]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여인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공자들] 저희들이 놀고 있을 때, 기녀가 저희 친구의 재물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친구를 도와서 여인을 찾고 있습니다.
[붓다]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들은 어떠한 것이 더 훌륭한 일입니까? 여자를 찾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을 찾는 것입니까?
[공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욱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있어서 ‘왜 사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이 올바른 질문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찾는 일’이라는 것은 ‘왜’가 아닌 ‘어떻게’이다. 부처님의 답변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들에게 ‘보시, 계행, 생천(生天)의 이야기’, 그리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갖는 위험, 타락, 오염과 욕망의 떠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이를 우리는 ‘차제법문’이라 부른다. 이 가르침은 바로 ‘어떻게’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차제법이 너무 정형화된 내용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부처님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주로 이 차제법문을 하셨다. 경전에서 우리는 차제법문에 대한 가르침을 쉽게 접한다. 그러다 보니, 이 가르침이 마치 공식화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같은 이야기라 해도 상대방이 처한 상황, 감정, 이해도 등을 고려하여 상대에게 딱 맞는 가르침을 주신다. 이를 우리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한다. 경전에서 보시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서 가르침을 주셨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후대의 우리가 이를 공식처럼 이해할 뿐이다. 

귀공자가 데려온 기녀가 그가 갖고 있던 귀금속 등을 갖고 도망갔을 때, 맥락 없이 보시의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과연 공감을 하고 나아가 감동을 할까? 그렇지 않다. ‘보시-지계-생천’으로 도식화되는 가르침인 차제법문을 맥락 없이 이해하게 되면, 감동도 공감도 없는 죽은 이야기가 된다.

부처님께서는 말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① 의미가 있을 것 ② 상대에게 참된 이익이 있을 것 ③ 상황에 맞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의미와 이익이 있다고 해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귀공자들에게 하신 차제법문은 이들이 인과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인과의 이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마음이 유연해지고, 바른 견해를 갖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부처님은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의 눈을 뜨게 하셨다. 

진리의 눈을 갖춘 귀공자들은 부처님께 출가를 청원하고, 출가 제자가 되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92호 / 2021년 7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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