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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관한 불교적 비전 ①

내면 평화 지향하는 무아가 사회참여 이끌 고리

기후변화와 팬데믹 사태에 맞물리며 사회 의제로 떠오른 ‘정의’
내면 중시하는 불교 특성으로 사회 참여 이론적 틀 구축 어려워
최근 동양철학 정체성 높아지며 현대 문제 해법 찾기 적극 나서 

‘북위태화십년 청동류금미륵불상’. 중국, 48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출처=구글 아트앤컬쳐
‘북위태화십년 청동류금미륵불상’. 중국, 48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출처=구글 아트앤컬쳐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체제는 이윤추구라는 개인의 이기심에만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 욕망이 지적 호기심, 도덕적 열정과 헌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 등과 함께 어우러져 작동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추동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쳐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은 크게 약화되거나 이미 사라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오늘날 자본주의는 “와인을 증류해서 알코올만 추출한 그라빠(Grappa)”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라빠엔 와인이 주던 아름다운 색깔도 풍미도 사라지고 우리를 취하게 만들 알코올 성분만 남아있다. 오늘날 시장사회는 ‘그라빠’와 같이 오로지 이기적 욕망만이 유일 요소가 되어 인간들을 더욱더 욕망에 미쳐 날뛰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크다. 기후변화 그리고 팬데믹과 같은 미증유의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회정의 문제는 최근 가장 예민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정의의 문제는 정치를 포함하는 정책이나 체제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정의는 가치관, 세계관을 포함하는 철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실망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이 책이 ‘이것이 옳은 것’이라는 분명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제 ‘Justice’(정의)의 부제 “What is the Right Thing to Do”(무엇이 옳은 일인가)가 의미하듯 샌델은 정의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 또한 정의에 관한 불교적 해법이나 구체적 실천의 방식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이론적 틀을 위한 시론적 성격의 글이 될 것이다. 향후 대여섯 번의 연재를 통해 소개될 내용은 2000년 미국의 불교윤리학회 학회지 ‘Journal of Buddhist Ethics’에 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대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의 참여를 위한 이론적 틀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내면적 변화를 통한 개인의 구원을 지향하는, 불교가 갖는 본질적 특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불교의 핵심이라 할 ‘무아’의 개념이 개인의 구원을 향한 불교의 일차적 목표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정의에 관한 불교의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오늘날 사회정의론의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에 대한 검토와 함께 불교적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이상, 그리고 ‘고통’과 ‘치유’에 대한 불교적 개념을 들어서 무아가 어떻게 불교인들로 하여금 개인적 구원의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고리로서 기능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의 종교적 목표는 깨달음을 체득함으로써 내면의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해탈 또는 열반으로 묘사된다. 상좌부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인 열반은 ‘절멸’되거나 ‘(불이) 꺼진’ 상태로 흔히 이해된다. 이것은 탐·진·치 삼독심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때로는 ‘오염’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정신적 장애의 소멸을 가리킨다. 한편 대승불교 전통에서 선호되는 용어인 해탈은 더 넓은 관점을 가진다. 해탈은 어떤 정신 상태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생사의 굴레, 즉 윤회(saṃsāra)로부터 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지혜의 획득을 가리킨다.

불교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기적 개인’의 종교라고 여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불교 그리고 불교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오해일뿐이다.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인 불국정토 사상, 그리고 미래불을 염원하는 미륵 사상은 동북아시아 불교권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민중 그리고 집단적·사회적 구원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전통이 풍부한 사회철학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인권, 자원의 공평한 분배, 공정한 법치, 그리고 정치적 자유 같은 현대적 의미의 사회정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유마경’(The Teachings of Vimalakīrti)의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과 같은 구절은 오히려 불교가 사회문제에 관해서 다소 소박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유심(唯心)이라는 불교 전통의 틀을 벗어나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위 구절은 기껏해야 “공공의 선은 개인의 도덕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실현가능하다”는 정도 이상의 의미로 해석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 불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고대의 철학과 종교들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정의의 문제들에 대하여 빈약한 관심을 보였다. 초기부터 사회적 문제들을 다뤄왔던 가톨릭마저도 19세기 후반에 이를 때까지 사회정의에 관여하거나 공식적인 문헌에서 사회정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서양의 정치사상이나 사회철학에서 사회정의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슈로서 등장했다. 실제로 오늘날 개념의 시민권, 정치적 평등, 그리고 공평한 경제적 자원의 분배와 같은 주요 개념들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서양에서 사회철학의 발전을 촉진시킨 근대화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동양에서는 사회철학의 발전을 지체시켰다. 서구 식민지 지배세력과의 군사적, 경제적 접촉에 의해서 주도된 ‘서구화’로서의 근대화를 뒤늦게 경험한 동양의 지성인들은 그들의 토속적 전통들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그 전통들을 당시 문제들과 관계가 없는 과거의 유물로 보게 되었다. 그 결과의 하나로, 불교와 같은 토착 철학과 종교들이 서구사상의 연구에 밀려서 무시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최근에 이르러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동양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의 가치를 더 많이 인식해감에 따라서, 새로운 사상적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관심사들을 현대적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써 전통을 재평가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환경, 성적 평등, 그리고 가난 등의 문제를 다루려는 소위 ‘참여불교’의 등장이 가장 눈에 띄는 최근의 노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참여불교는 단일한 운동으로 보기엔 너무 다양하고, 현대의 사회적 문제들에 불교가 참여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발전시켰다고 하기엔 너무 새롭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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