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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김성희의 ‘별난 이야기’ : 별, 깨달음, 그리고 연기

기자명 주수완

삼라만상 모두 투영된 현대판 ‘법계인중도’

육계 솟은 붓다를 별로 그려 깨달음과 불교의 요체 적극 드러내
연결된 별들이 폭발하는 과정 담아 탄생과 소멸 반복됨을 표현
별자리는 고정 형태 없이 연기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모습 그려 

‘별난 이야기 1803’, 한지에 먹과 채색, 211x150.5cm, 2018.
‘별난 이야기 1803’, 한지에 먹과 채색, 211x150.5cm, 2018.
 ‘별난 이야기 1804’, 한지에 먹과 채색, 212X150.4cm, 2018. 
‘별난 이야기 1804’, 한지에 먹과 채색, 212X150.4cm, 2018. 

붓다께서는 보드가야 숲에서 새벽녘에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한다. 이 새벽별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 경전에서는 ‘아루나’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뜻은 새벽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새벽, 혹은 막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의미를 한역경전에서는 샛별, 즉 금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쪽 하늘 샛별을 보며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막상 전통불화에서는 별이 묘사된 경우가 없다. ‘월인천강’처럼 대부분 ‘달’이 부처님을 상징하는 개념이었다. 앞서 천병근 화백의 그림에 붓다와 함께 별이 묘사된다든가, 혹은 김선두 화백의 ‘별을 보여드립니다’에서처럼 별이 불교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활용된 것은 현대에 와서다.

그런 의미에서 별을 깨달음, 혹은 불교의 요체로 더욱 적극 드러낸 인물로 김성희 작가를 들 수 있다. 제목이나 설명에서 굳이 ‘부처’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별난 이야기 1803’이나 ‘별난 이야기 1804’에 등장하는 실루엣을 보면 육계가 솟은 붓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배경을 형성하는 두 개의 축으로서 ‘무상’과 ‘소요(거닐음)’를 꼽은 바 있는데, ‘무상’이 불교적 개념이라면, ‘소요’는 도교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작가가 2000년에 선보인 ‘어주도’ 연작이 도가적 이미지라면,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별난 이야기’는 보다 불교적 이미지에 가까운 것 같다.

작가는 이 ‘별난 이야기’ 연작을 소개하면서 우리 모두는 별이라고 했다. 그리고 별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별자리처럼 우리 개개인은 모두 이어져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했지만, 조금만 바꾸면 우리 모두가 별이라는 것은 곧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것이요, 모두 이어져 있음은 곧 연기론적인 개념인 것이다. 한편 작가는 이러한 형상을 우주 먼지들이 모여 별이 되고, 그것이 다시 초신성으로 폭발하는 과정을 중첩해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 바 있다. 이같이 거대한 탄생의 사이클이 붓다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결국 석가의 성도와 열반, 그리고 미륵과 같은 또다른 부처의 탄생과 열반을 연기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나아가 과거 하나의 샛별로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을 상징했다면, 김성희 작가의 ‘별난 이야기’에서는 영웅적인 석가모니 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 모두가 사실은 붓다라고 하는 대승불교적 가르침으로 더욱 확장된 느낌이다. 칸트는 ‘저 하늘에는 빛나는 별, 내 마음에는 도덕률’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별과 도덕률의 대응관계와 마찬가지로 별과 깨달음 역시 서로 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자라고 하더라도 성불을 쉽게 믿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이 석가모니와 같은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겸손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께서 분명히 우리 모두가 이미 부처라고 하신만큼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다. 만약 우리 개개인의 능력이 부처님만큼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작은 힘을 모아서라도 부처임을 깨달아야 한다. 전통적인 불화 속의 만월이나 태양이 석가모니와 같은 영웅적 붓다를 상징한다면 김성희 작가의 그림 속 붓다를 구성하는 작은 별들은 평범한 우리들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음은 곧 모든 것이 연기적으로 이어져 있고, 우리는 타력의 개념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줌으로써 붓다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돈황 막고굴 제428굴 ‘비로자나법계인중도’, 북제시대.
돈황 막고굴 제428굴 ‘비로자나법계인중도’, 북제시대.

이러한 표현은 불교도상에서 ‘법계인중(法界人中)’이라고 하는 도상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법계인중이란 부처님의 몸에 삼라만상의 모습이 모두 투영돼 보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인도에서 신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기적인 ‘비수바루파’를 불교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비수바루파’란 비쉬누와 같은 신이 특정의 인간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신은 그 특정의 인간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음을 몸에 투사하여 보여줌으로써 그 스스로 신임을 증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응용하여 이 세상이 곧 법계이고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타낸 것인데 주로 비로자나불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김성희 작가의 ‘별난 이야기’는 결국 현대판 ‘법계인중도’라 할만하다. 이미 고려시대 불화인 후도인(不動院) 소장의 ‘만오천불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이 다시금 수많은 작은 부처님으로 모자이크화되어 표현되었던 것처럼, ‘별난 이야기’에서는 별자리들로 모자이크화되어 붓다 형상을 이루어낸다. 그러나 과거 ‘법계인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세속과 신들의 세계의 모습이었다면 ‘별난 이야기’는 그 요소들조차 별이라는 작은 붓다로 표현함으로서 붓다와 우리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오천불도’와 통하고, 또한 보다 더 대승적이다.

그 가운데 ‘별난 이야기 1804’는 귀걸이를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작가에 의하면 이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붓다의 보드가야참선에서 핵심, 즉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강조한 ‘무상’은 ‘별난 이야기’에 어떻게 담겨있을까? 이 연작에서 별자리는 단순히 붓다를 구성하는 요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나무도 그려지고, 고양이도 그려지고, 평범한 우리의 모습도 그려진다. 이렇게 각자(覺者)인 각자(各自)가 ‘부처’라는 고정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연기적으로 연결된 우리가 다시금 각각의 모습을 또다시 만들어낸다. 이러한 전체가 모여 다시 붓다가 될 수도 있고, 그런 붓다가 다시 나무도 될 수 있다. 즉, 일정한 형태가 없다는 의미의 ‘무상’은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성취의 개념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를 ‘희망’이라고 했다. 무상하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붓다’라는 제목으로 한정하지 않았기에 별자리로 삼라만상을 재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희 작가에게 별자리는 사물을 구성하는 원자이자, 깨달음의 원천이자 우리 원래의 모습인 것이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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