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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능소화 핀 날에 보내는 편지

기자명 최명숙

나를 키운 건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개화사에 핀 능소화보며 떠올린
중증장애 자녀 둔 어머님과 대화
시대 바뀌어도 장애인 삶 어렵지만
사랑 속에 행복했던 어린시절 보내

서울 방화동 개화사 풍경.
개화사에 핀 능소화.
개화사에 핀 능소화.

훈이 어머님 안녕하신지요? 뵌 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개화사에 핀 능소화를 보면서 문득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훈이도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

퇴직하기 전까지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에서 가까웠던 개화사엘 산책 삼아 자주 들리곤 했었지요. 

어느 해 이맘때쯤이었을까요. 개화사 앞에서 물리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훈이와 어머님을 우연히 만났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에서 자주 뵈었음에도 반색하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물으셨었지요. 

“우리 아이도 재활치료 잘 받아서 팀장님만큼 잘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어머님께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었지요. 중증장애를 가진 훈이도 잘 자라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려다가 마음이 짠해져 “개화사 담에 붉게 핀 능소화가 예쁘다”며 말끝을 흐렸었지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복귀한 그날 오후 내내 어머님의 말씀은 나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물리치료실 앞에서 치료 를 기다리며 어린 훈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불러주던 어머님의 노래도 지금까지 귓가에 남아있습니다. 그 노래는 어릴 적 나의 어머니를 그립게도 했지요.

어릴 적에는 재활치료를 받을 만한 시설이 주요 대도시 몇 곳 뿐이어서 시골에서는 재활치료를 받거나 특수학교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조산아라 발육이 늦어 그러니 기다려보라”는 의사의 말과 ‘나이 들면 좋아지겠지라’는 기대가 희망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때문에 장애가 있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어렵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향의 환경은 오히려 나의 성장 과정에서 재활치료사의 역할을 했고 정서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립문과 나무울타리, 집 앞의 개울과 징검다리, 새들이 집을 지었던 뒤뜰, 김매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놀던 고구마밭 등 참 아련하고도 고운 추억입니다. 또래 아이들과 잘 뛰어놀기가 어려웠던 나에게 그만한 놀이터는 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까치발 걸음으로 울타리를 짚고 마당 둘레를 하루에도 몇 번씩 돌며 놀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울타리를 잡고 놀다 보면 다리에 힘도 생기고 걷는 연습도 되겠다 싶어 울타리를 놀이터로 만들어 줬다”고 말했습니다. 걷기 어려워했던 나를 바라본 어머니의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가려면 엄마의 등에 업혀 큰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매일 아침 어머니는 나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며 주문처럼 말씀하곤 하셨지요.

“이다음에 우리 딸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혼자 찾아갈 수 있을 만큼만 잘 크면 좋겠구나.” 
“……”
“너의 이름이 세상에 나는 것보다 사람의 맘을 어루만져주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늘 그것을 위해 기도한단다.” 

그렇게 어머니의 등에 업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녔던 초등학교 1학년의 날은 참 행복했답니다. 어머니의 독백과 같았던 간절한 그 기도가 나를 이만큼이나마 키운 것이지요.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발전해도 장애인으로 사는 일은 어려움이 많고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처럼 나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너던 어머니 마음과 치료를 기다리며 훈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던 어머님의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속에 성장해 청년이 된 훈이도 나처럼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그 때처럼 개화사 앞에서 다시 만나 청년 훈이 소식을 전해주실 날을 기다립니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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