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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멧돼지·뱀·토끼가 친구 되고 은혜 갚은 ‘감동실화’

  • 불서
  • 입력 2021.07.19 11:30
  • 호수 1594
  • 댓글 0

스님들에게 직접 들은 경험담과 옛 스님들의 산중 수행 일화
모든 생명 존중·자비로 대하며 수행자가 보여준 ‘오래된 지혜’

스님 바랑 속의 동화
정찬주 글 / 정윤경 그림
다연 / 232쪽 / 1만5000원

법정 스님이 휘파람을 불면 호반새는 오동나무 구멍에서 나와 춤추듯 공중제비를 하며 묘기를 부렸다.

혜암 스님의 은사인 인곡 스님이 산길을 지나갈 때는 까치나 까마귀가 스님의 어깨에 앉곤 했다. 헌식할 때마다 암자로 찾아오는 다람쥐나 산새도 있었다.

경봉 스님은 콩을 심으며 한 구멍에 콩알을 대여섯 개씩이나 묻었다. 그것도 콩알이 보일 정도로 살짝. 꿩이나 산비둘기들이 파먹기 편하도록 콩알 몇 개를 더 넣은 것이다. 

만공 스님은 스승인 경허 스님 어깨 위에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지만 경허 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장미꽃을 좋아하던 성철 스님을 위해 제자는 장미나무를 심고 진딧물 잡는 약을 뿌렸다. 그 모습을 본 성철 스님은 호통을 치고는 장미를 모두 뽑아버렸다. 

오랜 세월 수행한 스님들은 뭇 생명들에게도 경계를 짓지 않았다. 그들의 생명과 삶을 온전히 자비로 감싸 안은 스님들이 짐승들과 맺은 인연은 우리들 눈에 그저 신비롭게 비춰진다. 그리고 한 번쯤은 ‘정말일까’라는 물음표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 정찬주 작가는 “감히 고백하건대 스님들의 일화를 빌려 썼으므로 즉,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쓴 허구가 아니기에 이 동화의 사실적인 내용만큼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고 단언한다. 

정 작가는 법정, 혜암, 경봉, 구산, 혜국, 성철, 수월, 경허, 지장, 청담, 구정, 혜통, 수불 스님 등 여러 스님들에게 직접 듣거나 큰스님들을 시봉하던 상좌들로부터 전해 들은 ‘놀라운’ 일화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이와 같은 동화를 다시 쓰기는 어쩌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모두 스님들의 ‘동화’ 같은 ‘일화’이기 때문이다. 

스님 바랑 속의 동화

책은 그리 길지 않은 각각의 이야기 15편으로 구성돼 있다. 자비, 사랑, 지혜를 주제로 정리된 일화는 동화라는 제목을 잠시 잊을 만큼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산중에서 수행하던 옛 스님들이 산짐승들을 자비로 대하고, ‘미물’이라 여겨지던 짐승들조차 은혜를 갚는 모습은 오늘날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생명을 가까이 두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한 편에서는 하루아침에 버려지는 생명들이 정비례로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전하는 따뜻하지만 울림 깊은 경종이다. 

효봉 스님의 제자였던 구산 스님은 백운산 토굴서 홀로 수행하며 밥 한 덩이를 늘 산토끼와 나눠 먹었다. 그해 겨울 쏟아진 폭우로 토굴이 눈 속에 고립되었을 때 스님의 양식을 보시하던 아랫마을 보살님은 토굴로 이어진 산토끼의 발자국을 따라 눈길을 헤치고 무사히 스님에게 양식을 전할 수 있었다. 

태백산 암자에서 목숨을 걸고 홀로 정진하던 혜국 스님은 다람쥐들에게 생콩을 나눠주며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다람쥐 똥으로 인해 양배추 농사를 망치게 되자 다람쥐 몇 마리를 멀찍이 떨어진 산으로 옮겨 놓았다. 다람쥐를 옮겨 놓고 돌아오는 길에 깊이 후회한 스님은 며칠 후 다람쥐들이 돌아와 있는 모습을 보고는 다람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러한 일화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자비로 대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깊은 감동을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치유와 백신은 생명에 대한 인식 전환에 있다는 오래된 지혜를 알려준다. 

‘산은 산 물은 물’을 비롯해 스님들과 불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불교작가로 부동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 작가의 깊고 담백한 글은 책 속에서 순박하고 따스한 그림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동화’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그림 속에 자비와 사랑, 지혜의 느낌까지 담아낸 그린이 정윤경씨는 앞서 ‘행복한 무소유’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등의 삽화를 담당하며 정 작가의 글과 완벽한 호흡을 선보이기도 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594호 / 2021년 7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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