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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다시 만나는 성철 스님 일대기와 참면목

  • 불서
  • 입력 2021.07.23 17:51
  • 수정 2021.07.23 17:52
  • 호수 1595
  • 댓글 0

소설 성철1·2 /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79·275쪽 / 각 1만5000원

성철 스님 일대기 입체적 묘사
깨달음 과정·수행정신 되살려
아내·딸 출가한 가족사도 담아
동산 스님 절절한 가르침 눈길

성철 스님은 근현대불교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해인사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지내서만은 아니다.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성철 스님의 영향으로 화두를 든다. 매일 능엄주를 외고 힘겨운 삼천배 정진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인다.

성철 스님은 그 자체로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부터 만화, 소설, 평전은 물론 국내외 학술논문과 박사학위 주제로도 자주 다뤄진다. 작가와 연구자들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불퇴전의 수행자로, 가야산 호랑이로, 자비의 화신으로, 출중한 사상가로, 우리시대 부처로도 나타난다. 스님의 삶이 파란만장하고 사유의 깊이와 직관의 비범함에서 비롯되고 있음이다.

백금남 작가도 성철 스님이라는 거대한 산과 마주했다. 그는 한국문단에서 대표적인 불교 소설가로 정평이 나있다. 1985년 삼성문학상과 1987년 KBS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 작가는 ‘십우도’ ‘탄트라’ 등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03에는 ‘파드마삼바바’로 민음사 제정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하고, 2013년 그의 소설 ‘관상’이 영화화돼 천만 관객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유마거사의 생애를 다룬 ‘유마’, 법정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소설 법정’, 붓다의 참 모습을 그린 ‘붓다 평전’ 등도 집필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탄탄한 스토리, 해박한 불교 지식, 사실적인 묘사가 일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중진 작가다.

‘소설 성철’은 칠순의 작가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각오로 오랜 기간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세밀한 시대 상황과 성철 스님의 수행정신을 그만의 언어로 생동감 있게 되살렸다. 성철 스님의 일대기와 진면목을 드러내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통해 오늘날 수행자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생생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이 소설을 통해 깨달음이란 것도 철저한 자기 수행에서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성철 스님이 한국불교에 남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세상이 혼란한 때일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줄 큰 스승의 존재가 절실하다. 영주라는 한 청년이 어떻게 어두운 시대를 관통해 심오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김진명 소설가)

소설은 성철 스님의 출가와 정진, 전법과 열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성철 스님의 생애가 아닐까 싶지만 그것은 선입견이다. 똑같은 ‘삼국지’라도 누가 풀어썼는지에 따라 성격과 재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성철 스님은 한 사람 일생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마음서재 제공
성철 스님은 한 사람 일생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마음서재 제공

백 작가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성철 스님의 일생을 입체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엄격한 유가에서 자란 성철 스님이 어떻게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게 됐는지, 스승인 동산 스님을 만나 어떻게 깨침의 길로 나아갔는지의 과정을 마치 타임슬립해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장성한 아들이 돌연 출가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 느껴야 했던 부모와 젊은 아내의 상실감, 진리의 길을 걷겠다고 각오했지만 가족을 등지고 떠나가야 하는 괴로움 등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게다가 속가의 어머니, 아내와 딸마저 출가해 스님이 된 비밀스러운 가족사도 담겨 있어 깊이를 더한다. 성철 스님이 수행과정과 깨달음의 과정을 좇아가는 여정도 자못 흥미롭고 비장하다.

‘졸지 말자는 생각뿐이다. 이놈의 원수 같은 수마. 그 누가 천근만근 내려앉은 눈꺼풀을 칼로 싹둑 잘라버렸던가? 칼, 칼이 필요하다! 내려앉은 눈꺼풀을 싹둑 베어버리고 싶다. 눈꺼풀은 사정없이 내려앉는다. 아아, 저건 졸음을 이기지 못한 어느 도반이 코 고는 소리인가? 아니다. 대장장이의 ‘마치질’ 소리다. 어김없이 경책 스님의 죽비가 떨어진다.’

‘하루는 선정 중에 뜨거운 열기가 꼬리뼈에서 척추를 거쳐 정수리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내 불길이 되어 활활 치솟다가 시간이 지나자 차츰 가라앉았다. 그런 뒤 일순간 눈앞에 찬란한 황금빛이 펼쳐졌다. 모든 의식이 황금빛 안에서 서서히 녹기 시작했고 온 우주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운을 느꼈다. 성철은 가부좌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지가 허공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오도송이 터져 나왔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성철 스님과 더불어 당송시대 기라성 같은 선사들의 일화와 ‘혈맥론’ ‘전등록’ ‘증도가’ 등을 통해 선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옛 선방의 풍경과 경허, 용성, 만공, 동산, 춘성, 탄허, 향곡, 일타 스님 등 근현대 고승들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보는 즐거움도 크다. 특히 선과 교를 둘러싸고 젊은 날의 탄허 스님과 범어사 금어선원의 선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한 치 물러섬 없는 논쟁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또한 동산 스님이 상좌 성철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아름답고 절절하다.

성철 스님은 한 사람 일생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소설은 그 힘이 철저히 수행과 자비에서 비롯됐으며, 그 길은 동경과 관망을 넘어 스스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일러준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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