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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지혜 ②

기자명 박희택

오온 공성 통해 모든 존재의 공함 밝혀

오온의 공성 조견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완성과 직결
깨달음, 즉 지혜의 완성은
공성의 철저한 인식을 뜻해

‘반야심경’에서 설하는 공성의 8가지 측면은, 용수가 ‘중론’ 귀경계에서 밝힌 8불중도와 결부지어 이해되곤 한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래불출(不來不出), 불일불이(不一不異)”와 “아공법공,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은 표현만 다를 뿐, 양 극단을 융섭(融攝)하는 중도철학 곧 공의 철학을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불생불멸로 이해하자면, 모든 현상 또한 고정된 실체[自性]가 없이 공[無自性]한 것이기에, 실제로 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지 않았으니 없어진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생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내재된 실재를 가지고 생하지 않음을, 불멸은 내재된 실재를 가지고 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생불멸의 공성을 대승불교 경전에서는 흔히 무생법인(無生法忍)으로 표현하곤 한다. 생함이 없는 현상임을 법으로 받아들여 인정함을 말하는데, 생함이 없으니 멸함이 없음까지 포함시켜 무생법인이라 한다. 생멸을 넘어선 진리 그 자체에 귀명하는 차원이다. 불생불멸뿐만이 아니라 아공법공, 불구부정, 부증불감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무생법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반야심경’은 무엇보다 5온의 공성을 거듭 설한다. 5온이 인간은 물론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만큼 5온의 공성에 관해서 세 차례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5온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느니라(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다.

두 번째는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역시 또한 그러하니라(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이다. 세 번째는 “공 가운데는 색·수·상·행·식도 없으며(空中無色 無受想行識)”이다.

5온의 공성을 조견함과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것, 깨달음)는 직결되며, 이들을 통하여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5온의 공성을 각기 ‘불이(不異)’와 ‘즉시(卽是)’의 표현을 사용하여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공 가운데’는 ‘공의 철학에 입각하면’의 뜻이며, 이 철학에 입각하면 5온이 없다고 확인시켜 준다. ‘없다[無]’는 허무나 부정이 아니라, 공성의 진리를 나타내는 지혜의 용어라 하겠다.

(3) ‘반야심경’은 일체의 공성을 설한다. 5온에 이어 12처, 18계, 12연기, 4성제, 지득(智得)의 공성을 밝힘으로써 지혜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라 함은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공성의 8가지 측면을 설할 때 나온 “시제법공상”의 ‘제법(諸法)’이며 ‘일체법’이라고도 한다. 12처의 공성은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로 표현되고 있다. 6근과 6경의 공성을 말한다. 18계의 공성은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에 담겨 있다. 6근계(안계~의계)과 6경계(색계~법계)와 6식계(안식계~의식계)의 공성이다.

5온과 12처와 18계를 3과(三科)라 한다. 이 3가지 과목으로 일체법을 분류할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공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3과만이 아니다. 붓다의 위대한 가르침인 12연기와 4성제조차 공성의 철칙(鐵則)을 벗어나 있지 않다고 설한다.

12연기의 공성은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로 표현되고 있다. 4성제의 공성은 “고·집·멸·도도 없으며(無苦集滅道)”의 구절이 나타낸다. 12연기의 순관(유전문)은 4성제 중 집성제에, 역관(환멸문)은 멸성제에 해당하므로 12연기와 4성제의 공성을 같이 통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無智亦無得)”고 하여 지득(智得)의 공성까지 망라하여 말씀하고 있다. 지혜는 반야를 말하며, 얻음은 반야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이나 열반을 일컫는다. 반야와 해탈과 열반까지 공성의 진리를 벗어나 있지 않음을 설파하고 있다. 깨달음 곧 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것은 이처럼 공성의 진리를 철두철미하게 인식함을 뜻한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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