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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과 필연

기자명 성진 스님

살면서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하는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시점에 생기는 난처함과 불행을 누구나 겪어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명 머피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필자 또한 기억하기 싫은 머피의 법칙이 있다. 필자가 동국대 입시를 치를 때 일이다. 당시 경찰행정학과는 대입시험을 치른 다음 날에 신체검사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원자 모두가 남자여서 옷을 탈의하고 속옷만을 입은 채로 신체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필자도 겉 상의를 벗고 바지를 벗는데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는 하얗게 타버리고 말았다. 하얀색 하의 속옷 위에 오색실로 정성스럽게 삐뚤빼뚤 큼지막이 새겨놓으신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가 눈치 없게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대입합격 기원 100일 기도를 하시고 받은 오색실로 새겨놓으신 것으로 상의 속옷으로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위치와 크기였다.

순간 뒤집어 입어 보려는 꼼수도 생각했으나 바늘로 수를 놓으셨기에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 그 많은 속옷 중에 하필 평생 한 번 있을 입시 신체검사 하는 날에 이 속옷을 입었는지 얼마나 어머니를 원망하고 그 순간 좌절했는지 모른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트에서 계산할 때 내가 서 있는 줄보다 다른 줄이 빨리 줄어드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물건은 꼭 마지막에 찾아보는 곳에서 발견되는 것인지, 간만에 마감일보다 이틀이나 일찍 밤새 글을 써서 호기 있게 전화했는데 다음 주 휴간이라는 말을 들을 때 정말 머피의 법칙은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사실 머피의 법칙의 유래는 1949년 미국 공군 소속의 에드워드 머피 대위의 인체의 중력한계치 실험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머피 대위는 이 실험을 위해 자신이 직접 계측기를 설치하지 않고 부하 기술자에게 작업을 시키면서 혹시나 전극을 반대로 설치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결국 작업자가 전극을 반대로 설치해 실험을 아무리 계속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게 되어버리는 일을 겪게 된다.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이다.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사실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수 있는 위험성을 무시하고 이 일이 설마 생기겠어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란 것을 알리는 의미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서 있는 줄만 늦는 것은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 개의 줄 중에서 내가 하나의 줄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두 줄 가운데 빠르게 될 확률이 2/3로 나의 1/3보다 높기 때문이다. 또한, 잃어버린 물건을 꼭 마지막에 발견하는 것은 이미 이곳저곳을 찾다 보면 찾은 곳을 제외하고 발견한 곳이 마지막 장소가 된다. 필자가 신문사 휴가일을 모르고 미리 글을 쓴 것 또한 항상 전 주 월요일에 먼저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면 쓴 것을 기억 못 하고 그 주에 연락이 오지 않았음에도 글을 써버린 것이다. 

이처럼 머피의 법칙에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불교의 인과설처럼 필연적 요소와 결과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머피의 법칙을 우연과 재수 없는 일로 여기고 싶을 때로 잘못 사용한다. 머피의 법칙은 잘못된 요인을 무시하면 잘못된 결과는 발생한다는 우연이 아닌 필연적 인과 법칙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 팬데믹도 인류가 무심코 놓쳐버린 위험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머피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필자의 머피의 법칙 결말을 이야기하겠다. 그해 결국 경찰행정학과에는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새겨놓은 오색찬란한 육자대명왕진언의 ‘가피’였는지 필자는 2지망 불교학과에 붙었고 결국 두 해 뒤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가져간 속옷 모두에 이미 ‘옴 마니 반메훔’ 진언이 오색실로 새겨져 있었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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