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용인된 살인이다. 나와 내 동료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생명을 말살하는 일을 비켜갈 수 없다. 그렇더라도 내게 죽어간 사람이 누군가의 자식이고 연인일 수 있기에 어떤 명분과 정의를 내세우더라도 가해의 자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의 저자가 그렇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곳 어른들의 채색된 무용담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 영향으로 저자는 열일곱에 베트남전에 자원입대한다. 그것이 애국심이라 믿었던 그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이면서 자신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적들을 죽이는 살인병기로 변신했다. 놀라운 활약으로 27개의 훈장을 받은 뒤 전역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기다렸던 것은 지옥 같은 전쟁의 트라우마였다.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 믿으며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상처는 더욱 깊어져갔다. 그 상처에 어찌할 줄 모르다가 플럼빌리지에서 틱낫한 스님을 만나며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그곳에서도 베트남 스님들을 믿지 못해 텐트 주변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고 지냈던 그가 평화의 수행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진한 감동으로 와 닿는다. “고통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다. 반대편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진정으로 알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다.” 조동종 선승으로 고통의 밑바닥서 삶의 이치를 깨달은 저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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