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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스님 “월주 스님의 보현행원 이어가겠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1.08.18 15:13
  • 수정 2021.08.18 15:15
  • 호수 1598
  • 댓글 3

동국대 이사장 성우 스님

월주 큰스님은 말보다 행동 앞서
동체대비 실천하는 보현보살 닮아
밥·법의 조화 이룬 이 시대 선지식

2019년 7월29일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월주 스님의 지구촌공생회 15주년 특별전시회 기념사진.
2019년 7월29일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월주 스님의 지구촌공생회 15주년 특별전시회 기념사진.

동국대 이사장 성우 스님이 월주 스님의 4재(8월18일)를 맞아 법보신문에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성우 스님은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은적사 주지, 금산사 주지, 나눔의집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편집자주

은사스님! 소승은 수준 높은 문필가이거나 명망 있는 수행승이 아닙니다. 무늬만 그럴 듯한 교수로, 학위논문과 연구논문 이외에는 저술활동이 전무했기에 추모의 글을 작성할 훤칠한 인재는 못됩니다. 그래도 제 눈높이에 맞게 솔직하게 몇 글자 적어 보겠습니다.

제 나이 17세, 벽두새벽부터 눈보라가 매섭던 양력 1974년 1월1일 생모의 영정을 끌어안고 공동묘지에 묻었습니다. 그때는 워낙 강심장의 철부지였는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미련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일천제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을 잃은 불초제자의 눈물은 서해바다가 되어도 아직 멈추지 않습니다. 생모보다는 30년이나 더 많은 삶을 스님께 의지하였고, 생전에 스님의 건강을 잘 챙겨드리지 못한 뒤늦은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던 스님의 교계(敎戒)를 망각한 제자를 장군죽비로 경책하여 주십시오. 스님의 장군죽비는 언제나 중생을 평등한 동일법성체로 인도하는 대자대비의 채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평소 말이 앞서기보다 먼저 행동하신 스님이야말로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보현보살이셨습니다. 동시에 문수보살에 비견되는 의미심장한 명언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스님은 법문집에서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진리에 목마른 사람에게는 법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밥’과 ‘법’은 점하나를 밖에 찍느냐 안에 찍느냐 차이만 있을 뿐, 획수까지 동일합니다. 이 둘은 중생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전자는 육체적 건강, 후자는 정신적 건강의 근간이 됩니다. 밥과 법의 조화로운 양육과 수행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가장 건강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지식이요, 보살의 화신입니다. 스님의 법체는 이 두 가지 요건을 원융무애하게 갖추셨습니다. 팔만사천대장경도 모두 밥과 법에 귀결될 뿐만 아니라, 80노구에도 불구하고 법문하실 때는 항상 “49세”라고 말씀하셨던 스님의 청정한 사자후가 오늘따라 새삼 듣고 싶고 사무칩니다.

스님께서는 문제가 있는 현장마다 참 주인공이셨습니다. 시(時)·처(處)·인(人)을 초월하여 백천만 억의 화신을 나투셨습니다. 캄보디아에는 깨끗한 우물과 교육시설, 미얀마에는 교육시설과 도서관, 지진이 발생한 네팔에는 교육기관과 식수시설, 케냐에는 농업학교와 지하수, 몽골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나눔의 집에서는 항일투사 등등 국내외 자비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나투지 않는 곳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도 조촐한 헌공을 받으시러 은적사 대웅전에 나투셨습니다. 우아한 석채 옷으로 단장하시고, 청아한 미소를 지으시며 사자좌에 좌정하셨습니다.

2020년 11월10일 수원 라마다에서 오찬이 스님과 최후의 오찬이었습니다. 영화사로 가서 제차로 스님을 모실 때, 법안이 퉁퉁 부어 있으셨습니다. 그때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삭발하느라 비눗물이 눈 안으로 들어가서 좀 부은 것 같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23일간이나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 때도 당당히 조사를 받았는데, 맛있는 오찬을 즐기고 당당하게 경찰조사에 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장 6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경찰청을 나오시면서 제 손을 꼭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때 스님의 손과 미소야말로 천진난만한 천진불의 수인과 염화미소였습니다. 그 이후 입적하시기 전까지 스님의 건강을 챙기는 정찬 한 끼 더 챙기지 못했습니다.

1996년 알프스에서 열린 시민단체 해외연수 기념사진.
1996년 알프스에서 열린 시민단체 해외연수 기념사진.

제가 스님 앞에서 제 흉 좀 보겠습니다. 제자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 깍쟁이요, 구두쇠입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주지가 부자면 절집이 가난하고, 주지가 가난하면 절집이 부자가 된다”고 하신 명언에 꼬박 6년 9개월 동안 금산사 머슴노릇을 했습니다.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재무업무만 빼고 혼자서 6직 업무를 컴퓨터 한 대로 해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시를 받으면 꼬박꼬박 사찰통장으로 입금하고, 한푼 두푼 모아 전주혁신도시에 1500평의 수현사를 준공하였고, 3년째 세계평화명상센터 건축불사를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대형불사는 꿈꾸기조차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건축비가 4년 전보다 무려 1.5배에서 2배까지 껑충 뛰어버렸고, 불사를 격려하고 감독하고 기뻐해줄 은사스님이 이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구촌공생회 회관건립기금으로 8억1000만원을 입금했지만 스님의 원력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함을 잘 압니다. 매월 박봉에 금산사주지를 살았던 추억을 회상하면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께서는 영화사에서 금산사로 내려오시면, 반드시 불사 현장을 손수 방문하시고 “수고했어, 성우 스님!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피곤이 절로 풀렸고, 그날 밤은 여명이 트는지 모른 채 단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예전 군법사 때, 교수생활 때, 은적사와 금산사 주지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소승은 초지일관 월급쟁이로만 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29년 동안 나눔의집과 18년 동안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직을 맡으신 스님께서는 보시 한 푼 받지 않고 무보수로 헌신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일하는재단, 경실련, 우리민족서로돕기 등 모든 단체의 이사장을 무보수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불교 NGO의 대부이셨습니다. 그 불퇴전의 보현행원을 소승도 일생동안 무보수로 이어나가겠습니다. 그것이 꼭 수행자의 정체성과 진정성이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장 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더욱이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고난의 길을 스님께서는 직접 개척하셨고, 그 청정무구한 여정을 직접 열어 보여주셨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동국대 이사장 성우 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 스님.

생사열반이 일여할진데 어디로 훌쩍 떠나셨습니까? 환지본처는 하셨습니까? 멋진 본지풍광을 다시 한 번만 더 보여주십시요! 스님께서는 떠나셨지만 제자는 아직 스님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행원은 바로 우리들이 부단히 수행해야할 보현행원이기 때문입니다. 스님 그 동안 중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또 경배드립니다.

불기 2565년 8월 18일 불초제자 성우 삼가 올림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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