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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화·역사 투영한 성보 창출 기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8.23 09:43
  • 수정 2021.08.23 12:45
  • 호수 1598
  • 댓글 0

3.1운동·세월호·5.18민주화 그린
흥천사·장곡사 감로도 ‘신선·압권’
시대정신 동반 과감한 결단이 관건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인이 경성의 황금정 즉 지금의 을지로에 황금연예관이란 극장을 세웠다. 광복 이후인 1946년 김동렬이 신축하여 국도극장으로 이름을 바꾸며 5월28일 개관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국도극장은 아쉽게도 1999년 철거됐다. 그때 시민들은 유구한 역사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건축·공간이라 해도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간단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현재는 호텔 국도가 자리하고 있다. 

국도극장이 헐려나가는 그때 국립민속박물관은 ‘추억의 세기에서 꿈의 세기로-20세기 문명의 회고와 전망’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근현대의 일상생활용품을 선보인 파격적인 전시회였다. 1970년대의 안방과 부엌, 이발관, 사진관 등이 통째로 전시됐다고 보면 당시의 전시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마, 인력거, 고무신 땜질 도구, 앉은뱅이 책상, DDT 뿌리개, 영화 포스터, 전축, 가요 음반 등 ‘생활 유물’ 600여점이 한 세기를 관통하듯 펼쳐졌다. 

국도극장이 헐리고 ‘추억의 세기…’ 특별전이 열리는 그해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관리 필요성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문화재 지정 가능성이 높은 100년 전의 건축물에만 눈을 돌리는 사이 100년 후에 문화재로 지정될 건물은 은연 중 사라지고 있음을 간파·공감했기 때문이다. 먼 과거보다 가까운 과거에 무게를 두고 연구하는 역사학의 흐름과 일상 생활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사회정서가 대중들의 인식 전환에 크게 작용했다. 

문화재청은 2000년 4월부터 전국적으로 개화기·광복 무렵 세워진 근대건축 200여건을 정밀조사했다. 국토개발, 도시계획, 생활양식의 변화 등에 맞물려 저평가 돼 소멸 위기에 처한 근대 건조물들을 보호하려는 행보였다. 그 결과 2001년 2월 말 문화재보호법의 개정안이 통과되며 근대건축등록유산제가 실시됐다. 

등록문화재 제1호는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이었다. 이후 2021년 4월까지 총 901건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이 가운데 종교관련 등록문화재는 122건이었다. 법보신문이 조사한 현황분포를 보면 가톨릭(46), 개신교(39), 불교(37) 순이었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는 2010년 등록됐는데 최근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등록문화재 지정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법이 1999년에 있었다면 국도극장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억의 세기’ 특별전시회를 기획한 유물과학과 기량 학예연구관은 “전시를 계기로 근현대 일상용품을 한 시대의 맥락을 보여주는 도구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일상용품이 한 시대를 증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대상이 용품에 스며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력거나 영화 포스터, 가요 음반 등의 생활 자료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간과해서도 안 된다. 고려·조선 시대의 사람들도 일상에서 쓴 청자나 백자, 다완, 목가구가 보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오늘의 시대상을 담은 ‘그 무엇’에 예술성이 더해지면 보물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암사, 수도사, 백천사 운대암의 감로탱화에 묘사된 탈춤꾼은 놀이판에서 부채를 펴들고 솟대 위의 솟대쟁이와 재담을 나누고 있다. 백천사 운대암의 감로탱화에서는 탈을 쓴 어릿광대가 장고를 메고 있다. 어느 특정 공간에서의 연희를 그대로 담은 탱화다. 현대작의 탱화에도 저 연희도를 그대로 그려 넣어야 할까? 아니라고 본다. 

서울 흥천사 감로왕도를 돌려보자. 하단부에는 대장간, 전당포, 전깃줄 공사는 물론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 논일하는 모습과 새참 내오는 광경, 관아에서 벌어지는 재판도 보인다. 흰 분으로 지워진 부분은 3·1운동 광경과 일본 헌병이 등장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사실적 표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상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2017년 조성된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에 봉안된 감로도가 대표적이다. 세월호, 5·18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담아냈다. 시대정신을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억울하게 숨진 고혼들을 천도하려는 장곡사 주지 서호 스님의 원력이 배인 작품이다. 이것은 불교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첫 걸음이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시대상을 담은 성보·작품들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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