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후위기시대 가장 큰 약자

기자명 최종환

며칠 전, 무심히 스친 뉴스는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인류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머지않아 잠기게 된 부산과 같은 해양도시들을 대비하여 새로운 수상도시가 계획된다는 내용이었다. 

돌아보면 지구 온난화는 세대가 여러 번 바뀌기 전부터 예측된 지구적 문제였다. 필자의 어린시절 온난화를 촉발하는 오존층 파괴 원인이 된다며 에어컨의 냉매가 되는 프레온가스나 헤어스프레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면 오히려 지구파괴를 막기에 희망적인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사실은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환경의 경고를 무시해 왔다. 부지불식중에 벌어진 잔혹한 환경파괴의 일상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폐가 부어올라 죽은 어린 거북의 장기에 가득한 페트병과 쓰레기들, 물고기의 뱃속을 휘감아 보기에도 잔혹한 플라스틱 잔해들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어리석은 인류에 대한 슬픈 원망으로 보인다. 

쉽고 편리한 문명의 역작으로만 여겨졌던 플라스틱의 역습. 우리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썩지않는 땅, 죽어가는 바다의 경고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생명의 존귀함을 무시하고 편리를 좇은 이기적인 세상을 향해 모진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월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는 시점이 10년 앞으로 다가왔다고 발표하였다. 이미 지구는 전례 없는 폭염과 홍수, 산불 등 기후위기 재난을 겪고 있다. 지구적 재난에서 예외일 수 없는 우리나라는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 체제하에 온실가스 감소를 위한 탄소감축 정책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국이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파리협정 준수를 위한 탈석탄화와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적극적 계획이 모호하고 농업, 먹거리 전환방안의 부재 등 불완전한 실효성을 지적했다. 기후 영향, 에너지와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취약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방법이 없고 기후위기 당사자들이 배제되는 등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다. 기후위기 시대, 사실상 더욱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재난 상황에 불가항력적인 사람들이다. 정보의 부재, 빈곤의 굴레, 장애로 인한 차별적 사회로 기후위기 시대 무저항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폭우로 지붕이 내려앉은 집을 수리하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장애가 있는 노부부와 역시 장애가 있는 자녀가 사는 저소득 가정인 이 집은 전에 없던 폭염과 폭우 속에 불안한 축대를 바라보며 살아갈 방법을 걱정하고 있었다. 인간이 연간 배출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는 결국 취약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부부의 집 후미진 벽에는 탄소 문제의 화두인 연탄 100여장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원래 연탄을 팔다가 수요가 급격히 줄어 남아있는 것을 팔지도 못하고 천막으로 덮어놓다 보니 집은 어수선하지만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연탄가게 노부부에게 이 탄소배출물은 아직 귀중한 재산이다. 플라스틱의 역습, 지구온난화의 폐해를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이들에게 탄소제로니 제로웨이스트니 하는 말들은 공염불일 수도 있겠다.

예전 ‘하나뿐인 지구’라고 하는 장수 프로그램은 멸종 위기 동물과 빙하가 녹고 자연파괴가 되는 장면들로 경각심을 주었다. 이제 이 경각심은 해수면 상승, 재난·재해 등 구체적인 재앙으로 우리 사회를 급습하고 있다. 지구를 지켜 사람과 자연을 살려야 할 때다. 단,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시대 가장 큰 약자, 가장 어려운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불가항력적인 두려움에 처한 이가 누구인지를 살필 때 기후위기 대응이니, 탄소감소니 하는, 정책들이 진정 모두를 살리는 정책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시대, 우리는 진정한 불살생(不殺生)과 방생(放生)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야 한다.

최종환 서울시립영등포 장애인복지관 관장 chungpajjang@hanmail.net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