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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세종에게 배워야

기자명 이병두

조선 왕조 제4대 임금 세종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그가 주도해서 시행한 주요 정책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는 고결하지도 나랏일을 잘하지도 못하오. 하늘의 뜻에 어긋난 점이 분명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내서 나로 하여금 그 꾸짖음에 답하게 하시오”라며 신하들에게 자신의 허물과 잘못된 정책을 비판해 달라는 기록(‘세종실록’ 7년[1425] 12월8일)은 ‘세종이 왜 훌륭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즉위 초기 몇 년 동안, 아버지 태종이 상왕으로 있으면서 실질 권력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은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태종이 죽고 2년 뒤에 “기해(己亥, 세종 1)년부터 임인(壬寅, 세종 4)년까지 내가 비록 임금 자리에 있기는 하였으나 그 기간 동안 국정은 모두 [상왕] 태종에게 말한 뒤에 시행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한 일은 없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6년 12월1일)

양위 후에도 병권을 쥐고 있던 태종은 세종의 장인 심온을 죽여서 아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보통 인물이라면 이런 아버지의 위세에 눌려 무력한 왕이 되고 말았겠지만 세종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입지를 확대해 나간다. 상왕 태종이 자신을 견제하고 군사·외교 활동을 직접 챙기는데도 모른 척하면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정체제와 예제(禮制)를 정비하는 등 내치에 힘썼다. 상왕에게 순종하면서도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갔으며, 경연(經筵)과 집현전 확대를 통해 자신의 정치 역량을 강화하고, 인재를 발굴해 지원 세력으로 만들어갔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튼튼하게 하는 동시에 태종의 신뢰도 얻어냈다.

어느 시대나 국가와 조직의 최고 지도자 자리는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즉위한 세종은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 ‘무서운’ 아버지 태종과 권력을 공유하는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훌륭한 지도자’의 명예를 잃지 않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라면, 세종처럼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을 헤쳐나갈 길을 찾아낸다. ‘다른 집단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과거 역사의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풀어나간 사례를 거울로 삼고 응용하여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 실천에 옮긴다. 특히 막강 권력을 가진 상왕 태종을 모시고 힘든 시절을 이겨낸 세종의 지혜 주머니를 활용하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폭넓게 튼튼한 지지를 얻어 퇴임 이후의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재를 발굴할 의지가 없이 자신이 그어놓은 선 안에 들어온 인사와 선 바깥의 사람들을 차별하게 되면, 선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적이 되어 정권을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COVID-19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이제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산층들의 삶도 위태롭다. “입학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동기생 얼굴도 모른다”며 쓴웃음을 짓는 대학생들의 ‘농담’이 여간 무겁지 않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쟁탈전으로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칫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600년 전에 세종이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보여준 길이 있는데 왜 외면하는가. 대통령에 필요한 덕목은 밀어내기가 아니라 끌어안기이다. 이제까지 그어온 ‘내 편, 네 편’의 선을 아예 없애면 좋겠지만, 그 일이 정 힘들면 그 선을 훨씬 더 넓게 그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세종처럼 “내 잘못을 열심히 찾아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라. 그러면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나아가고 국정은 안정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재임 기간, 세종에게서 훌륭한 지도자의 길을 찾길 바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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